[밀물썰물] 추석 차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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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의 한가위,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옷에 댕기꼬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 길을 쏘다니며 기뻐서 날뛴다.”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는 하동군 평사리의 한가위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댕기꼬리 아이들이 한가위에 물고 다녔던 햅쌀로 만든 송편은 추석 차례상에 빠질 수 없는 음식이다. 지역별로 송편은 경상도는 칡송편, 서울·경기는 오색송편, 충청은 호박송편, 강원도는 감자송편, 전라도는 꽃송편을 빚기도 했다. 유교 제례 문화의 지침서인 ‘주자가례’에는 명절 차례란 추석에는 한해 농사를 무사히 지었음을, 설에는 새로운 해가 밝았음을 알리는 일종의 의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설날과 추석에는 ‘제사를 지낸다’고 하지 않고 ‘예를 올린다’고 말한다. 분수에 맞게 합당한 선에서 조상에게 감사한 예를 표하는 것이 추석 차례이다.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 종갓집에서도 추석 차례상에는 포와 제철 과일, 송편, 차, 대구포나 명태포, 술만 올릴 뿐 전도 굽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가정마다 ‘조상을 잘 모셔야 복을 받는다’는 조상숭배의 의미가 더해지고, 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차례상 가짓수가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두 번째 ‘코로나 추석’이 다가왔다. 정부는 오는 17일부터 일주일 동안 ‘가정 내 최대 8인까지’ 가족 모임, 백신 접종 완료자에 한해 요양병원과 요양시설 접촉면회를 허용한다고 한다. 물론, 최소 인원만 고향을 방문할 것을 강조했다. 여전히 낯선 풍경이다. 1897년 평사리 최참판댁 한가위처럼 일가친척이 왕래하는 모습도 많이 없어지면서, 차례음식 양과 가짓수도 간소화되는 추세다. 이런 흐름을 타고, 차례상이 밀키트 등 간편식으로 대체되고, 온라인으로 주문·배달하는 풍경이 일상이 되고 있다. 한 신용카드 회사의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58%가 명절음식을 간소하게 하거나, 16%는 아예 하지 않고, 52%가 밀키트 등 간편식 구매를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2년 차 코로나로 바뀌고 있는 명절 문화다.

나라와 종교에 따라 방식만 다를 뿐 조상을 추모하는 문화와 관습은 오랫동안 지속한 전통이다. 잠시 가족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지 않는다고, 상이 가득 찬 차례상을 차리지 않는다고 조상과 가족을 생각하는 정성과 마음이 덜한 것은 아니다. 올 추석, 가족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기억하고, 또 기약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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