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국 대표 술로 정착하기까지 어떤 과정 거쳐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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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하는 쓰고도 단 술 소주 / 남원상

9억 1700리터 대 17억 리터. 2019년 우리나라 소주와 맥주의 출고량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소주보다 맥주를 더 자주, 더 많이 마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데 사람들은 왜 술 하면 소주부터 떠올릴까? 철이 조금 지난 자료(2010년 한국주류연구원 설문조사)이긴 하지만, “술 하면 떠오르는 술은?”이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65%가 ‘소주’라고 답했다. ‘맥주’는 24%였다. 또 있다.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누군가가 어깨를 툭 치며 “술 한잔해야지” 말한다면 그날 마시게 되는 것은 십중팔구 맥주도, 막걸리도, 위스키도 아닌 소주다. 이처럼 소주는 소비량과 무관하게 술의 대명사처럼 각인돼 있다.


알코올 도수, 16.5도까지 내리게 됐는지
소주병, 왜 하나같이 초록색인지 등 설명

<우리가 사랑하는 쓰고도 단 술 소주>는 우리가 듣지 못했던 소주의 흑역사에서부터 소주의 살아온 인생까지, 소주의 역사에 대한 추적 리포트다. 이에 소주가 한국의 대표 술로 자리 잡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알게 된다.

동시에 왜 소주병은 하나같이 초록색인지, 이 초록색 병에 담긴 소주가 화요나 문배주, 일품진로 같은 소주랑은 뭐가 다른지, 한때 40도를 넘나들었던 소주가 어쩌다 16.5도까지 내려오게 됐는지, 옛날에 소주 안주로 즐겨 먹었다던 참새구이가 왜 이제는 찾아보기조차 힘들어졌는지, 또 삼겹살은 어쩌다 대표적인 소주 안주가 됐는지와 같은 얘기도 다룬다.

재밌는 건, 참새구이가 소주 안주로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는 거다. 한국전쟁 이후 서울 명동 일대에는 짭조름한 참새구이에 소주나 막걸리를 잔 단위로 파는 노점이 부쩍 늘어났는데, 구운 참새를 판다고 해 ‘군참새집’이라 불렸다. 이 군참새집에서는 참새구이뿐만 아니라 소나 돼지의 내장 꼬치구이, 토끼고기, 가락국수 등도 함께 팔았다. 1960년대에 대도시를 중심으로 소주를 찾는 서민들이 늘면서 군참새집의 인기도 높아졌다. 1967년 영화 ‘어느 여배우의 고백’에서 당시 군참새집 풍경이 어땠는지 엿볼 수 있다. 그 시절 참새구이가 소주 안주로 인기를 끌자 쑥새, 멧새, 촉새 등 비슷한 크기의 다른 야생 조류까지 참새라 속여 파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에 정부는 1960년대 말 군참새집 단속에 들어간다. 1970년엔 조수보호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영업을 목적으로 한 참새와 꿩 사냥을 금지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7년이 지난 1977년 다시 나타난다. 참새 개체 수 증가로 농작물 피해가 커지자 정부가 한시적으로 참새 포획을 허용하면서였다. 하지만 예전만큼의 인기는 되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미 곰장어구이며, 해삼, 멍게 같은 값싼 대체 메뉴가 소주 안주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이라는 공식에는 1997년 외환위기도 큰 역할을 했다. 이 시기 대만에서 구제역이 퍼져 돼지고기 수출이 막히면서 한국산 돼지고기 수출이 늘고, 국내 소비량도 늘면서 돼지고기 값은 상승세를 탄 한편, ‘가격 파괴’를 내세운 삼겹살 전문점들이 속속 들어선다. 지금의 치킨집이 당시엔 삼겹살집이었던 셈이다.

책은 스펙타클한 소주 연대기를 해박하고도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소주 한 잔 생각나지 않을까? 인생의 쓴맛, 단맛 또한 이 책 속에 있다. 남원상 지음/서해문집/304쪽/1만 4800원. 정달식 선임기자 do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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