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금정산 들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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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 듀크 대학의 한 연구팀이 어린 개와 늑대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생후 8주가 될 때까지 늑대는 24시간 사람의 보살핌을 받게 한 반면 개는 사람과의 접촉을 최소화했다. 그 후 먹이를 한 곳에 숨긴 다음 개와 늑대에게 찾게 했다. 이때 사람은 먹이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개는 늑대보다 2배 이상 먹이를 잘 찾아냈다. 사람의 시선을 인식하는 능력이 늑대보다 훨씬 나았던 것이다.

낯선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달랐다. 개는 대부분 얼굴을 핥으려 다가갔지만 늑대는 피해 다녔다. 먹이를 밀폐된 용기 안에 넣어서 줬을 때도 늑대는 혼자 낑낑대다 포기했으나 개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몸짓을 보였다.

이처럼 유전적으로 같은 종임에도 불구하고 개는 인간에게 더없이 친숙한 존재가 됐지만 늑대는 여전히 사람과 공존하기 힘든 동물로 남아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늑대가 개로 진화한 과정에 대한 유력한 가설은 사람이 사냥의 효율성을 위해 늑대 새끼를 포획해 길들였다는 것이다. 뭔가 부족하다. 소나 돼지, 염소 등 다른 가축에 비해 개는 유달리 사람에게 친밀하다. ‘단지 사람 곁에서 살 뿐’인, 그래서 매정한 고양이와 비교해도 그렇다. 어쩌면 개에게는 개보다 사람이 더 교감하고 의지하고 신뢰하는 대상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온 개념이 이른바 ‘자기 길들이기’(self-domestication)다. 인간이 늑대를 개로 길들인 게 아니라 늑대들 중 일부가 능동적으로 개가 되는 길을 걸어왔다는 가설이다. 사람에게 적응하고 공존하기 위해 털의 색깔을 바꾸거나 꼬리를 말아 올리는 등 사람이 좋아할 만한 특징을 갖추는 쪽으로 스스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사람이 개를 선택했다기보다 개가 사람을 선택했다는 이 가설은 충분히 설득력 있어 보인다.

요즘 유기견들이 들개로 변해 곳곳에 출몰하며 사람까지 위협한다는 소식이 왕왕 들린다. 부산 금정산 일대에도 들개가 떼 지어 나타나 등산객들이 불안해하고 있지만 포획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아직 사람을 해쳤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지만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들 들개가 다시 사람 곁에 돌아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한다. 사람에게서 버림받아 들개가 됐겠지만, 놈들 스스로도 사람을 버리는 길을 선택했을 터이다. 왠지 씁쓸한 이 결과는 사람과 개, 어느 쪽의 배신으로 봐야 할까.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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