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정치판과 180도 다른 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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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진 서울경제팀장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판은 비온뒤 강물처럼 혼탁하다. 유력 주자들에 대한 고발사주 논란과 대장동 개발 이슈 등 메가톤급 의혹 제기로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막말 공방까지 벌어지고 있다. 대선이 5개월여 남은 시점에서 아직 어느 후보를 찍겠다고 정하지 못한 부동층도 최근 치러진 대선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대선 후보들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후보간 의혹 맞불에 대선 후보들의 비전 경쟁은 뒷전이어서 안타깝다.

또한 국회의원 아들이 대장동 개발을 주도한 업체에 7년 근무한 뒤 50억 원의 퇴직금을 받고, 국회의원이 과거 위안부 할머니 기부금을 사적으로 쓴 것이 드러나는 등 국민을 대표하는 자리에 있는 이들의 상식이하 행동에 대한 실망감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선 5개월 앞 비전 대신 의혹 뒤덮어
마구잡이 입법, 사법 정치편향도 불신
재계 아름다운 행보… 배터리·수소 동맹
희망의 정치, 아름다운 정치는 언제쯤?

여기에 다수당의 마구잡이 입법으로 인한 폐해와 사법 수뇌부의 여당 편향 행보로 인한 입법·사법부에 대한 불신도 적지않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은 하루가 멀다하고 오르고 있다.

정치 상황만 보면 도대체 정상적인 곳이 있을까 싶다. 이런 가운데 그나마 믿을만한 행보를 보이는 곳이 있다. 바로 재계다. 아수라장 같은 정치판에 아랑곳 않고 코로나19에 “한 번 해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특히 살벌한 경쟁 상대였던 국내 기업들끼리 ‘동맹’이라는 이름아래 손을 맞잡아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을 정도다. 바로 K-배터리 동맹에 이어 K-수소 동맹(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이 결성된 것이다.

K-배터리 동맹은 현대차가 전기차 분야에서 배터리 물량 조기 확보와 협력을 위해 제조사에 손을 내밀면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현대차 정의선 회장은 지난해 4대 그룹 총수들의 회동을 주도했다. 정 회장은 지난해 5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6월 구광모 LG그룹 회장, 7월 최태원 회장까지 차례로 만나며 미래 전기차의 배터리 협력을 주도했다. 세계 2차 전지 시장을 주도하는 K-배터리 주역인 LG화학과 삼성SDI, SK이노베이션이 현대차의 주요 협력사였기에 가능했다.

K-배터리 동맹을 계기로 4대 그룹 총수들의 회동은 정례 모임으로 발전하는 모양새다. 맏형 최태원 회장을 중심으로 이들은 경제 현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다. K배터리 기업들은 나아가 미국 대형 완성차업체와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등 ‘배터리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결성된 K-수소 동맹은 이 같은 K-배터리에서의 협력을 발판으로 15개 국내 대표기업이 뭉친 것이다. 이는 오는 2050년께 규모가 30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글로벌 수소시장을 공략하기 위함이다. 이들은 오는 2030년까지 50조 원이상을 투자하겠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이들 모임은 기업의 권익을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나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같은 친목 모임과는 달리 특정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기 위한 협력 차원이다. 기업별로 처한 상황이나 이해관계가 다른데도 이 같은 모임이 대규모로 잡음없이 이뤄지는데는 젊은 오너들의 오픈 마인드가 한몫하고 있다.

재계 1·2위인 삼성과 현대차의 협업도 눈에 띈다. 현대차의 첫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5’에 삼성의 OLED 디스플레이를, 제네시스 ‘GV60’의 디지털키로 삼성전자 최신 폴더블폰 ‘갤럭시 Z 폴드3’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평소 호형호제하는 이재용-정의선 두 오너의 두터운 친분 속에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서로 밀어주며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속에도 동분서주한 덕분에 기업들의 실적도 순항중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나란히 역대급 실적을 낼 전망이다. 현대차도 2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공격적인 투자 소식도 들린다. 이재용 부회장은 향후 3년간 반도체 분야에 국내 180조 원을 포함해 240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했고, 정의선 회장은 오는 2025년까지 글로벌 친환경차 판매 톱 3에 들겠다고 밝혔다.

경제계 한 인사는 “코로나19로 경제 상황이 어수선하지만 재계는 오너들끼리 ‘해보자’는 분위기가 강해 그 어느 때보다 희망적”이라고 전했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정치판도 재계 반만 닮아라’고 말하고 싶다. 재계처럼 희망의 정치로 가는길은 언제쯤 열릴까. dj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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