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두더지 잡기' 게임식 경제정책, 서민만 죽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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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녕 경제부장

전세 기간 만료를 6개월 앞둔 70대 김 모 씨는 걱정이 태산이다. 남편이 병으로 몇개월 전 사망한 뒤 살고 있던 아파트 전세 명의를 본인으로 바꿔야 하는데 전세자금 대출이 힘들다는 통보를 최근 은행으로부터 받았다. 대출 규제가 시작되면서 별다른 소득이 없는 김 씨에게는 대출한도가 기존처럼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월세를 감당할 여력도 되지 않는 김 씨는 어디로 가야할지 전전긍긍이다. 결국 내년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은행 직원의 말만 믿고 그냥 기다려보기로 했다.

급작스러운 대출 규제 서민 ‘멘붕’
실수요자 고통, 정책 실패 자인
집값 잡는 데 이용 부작용 당연

정치하듯 경제, 수정·보완 외면
지지층 여론 따라 정책 결정
“아무것도 안하는 게 나아” 비판


부산 시내에 상가를 가지고 있는 최 모 씨는 급한 돈이 필요해 상가를 담보로 대출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상가로부터 받고 있는 세를 기준으로 대출한도가 정해지는데 최근 규제가 강화되면서 받고 있는 세가 너무 적어 대출 여력이 없다는 통보를 은행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올 초 상가 계약 갱신 때 어려운 세입자의 사정을 고려해 세를 올리지 않은 것이 후회막급이다. ‘착한 임대인’으로 선한 영향력 전파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겠다는 본인의 생각이 결국 잘못이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모 온라인 은행의 신용대출 한도가 1000만 원 줄어든 50대 한 모 씨는 아쉬웠지만 대출 연장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대였던 연 이자율이 거의 5%로 뛰어오른 것을 보고 튀어나오는 욕을 참지 못한채 연장 신청절차를 중단했다. 이후 오프라인 은행에 신용대출을 문의했던 한 씨는 직장인 신용대출이 전면 중단됐다는 통보를 받고는 다시 휴대폰을 들고 배 가까이 오른 이자율을 감수하고 온라인 신용대출 절차를 재개할 수밖에 없었다.

수년 동안 늘어난 가계대출을 넋놓고 지켜보다가 갑자기 가계대출 증가가 심각하다며 최근 몇 주 사이에 대출 문을 급하게 조인다. 그러나 ‘가계대출 절벽’을 규탄하는 아우성에 밀려 얼마 못가 대통령까지 나서 전세·잔금 대출 등에 대한 유연한 대처를 주문한다. 대출을 조일 시점에 실수요자를 고려하지 않았음을 자인한 꼴이다.

이렇게 갑자기 대출을 조인 가장 큰 이유는 결국 가계대출의 문제가 아니라 집값을 어떻게든 잡아보기 위한 것일게다. 현 정부 들어 27번의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다고 한다. 정책의 파급은 고려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곧바로 규제를 더하고 또 문제가 생기면 또 규제를 더해온 것이다.

두더지게임이 연상된다. 경제정책을 '튀어오르는 두더지 대가리 때리기' 식으로 전개한다. 27번째 부동산정책을 발표하던 올 7월 28일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1997년의 IMF사태나 2008년의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또 오게 되면 집값이 내릴터이니 추격매수를 자제하라고 발표한 바 있다. 국가부도 사태까지 예견하며 집값이 내릴 것이라고 외쳤던 현 정부당국이었으니 집값을 잡고싶은 심정이야 이해를 하고도 남는다.

가계대출이 문제였다면 이미 ‘영끌 대출’이란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한 수년 전부터 가계대출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했다. 자신들이 예견한 국가부도 사태를 차마 자초하지 못하니 가계대출 문제를 들고나와 대출 조이기로 집값을 잡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부작용이 없을 수 없다. 한 치 앞을 못내다본 이 ‘규제 더하기 규제’는 결국 여론에 밀려 대통령까지 나서 ‘실수요자는 보호해야 한다’고 발표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전 칼럼에서도 언젠가 언급한 적이 있지만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취지는 좋은데, 그 결과가 좋지 못한 것이 문제다. 그러나 더 문제는 정책의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정책을 개선하거나 방향을 바꾸는 변화를 시도해야 하는데 오히려 더 강경하게 그 정책을 고수한다는 점이다. 정책의 부작용이 나타나면 그 정책을 수정하기 보다 새로운 규제로 틀어막으려 해 왔다는 것이다.

경제를 불변의 사상을 추구하는 정치로 착각하는 듯해서 우려스럽다. '양도소득세가 거래와 주택공급을 막기 때문에 완화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오고 '종합부동산세 부과 기준이 과하니 현실화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당 내에서도 나오지만 지지층의 거센 반대에 시행이 미뤄지는 현실은 이런 우려를 잘 대변하고 있다.

‘두더지 잡기’ 게임의 고수로부터 들은 노하우가 기억난다. “튀어오른 두더지 대가리를 때리려 하면 이미 늦다. 튀어오르려는 대가리로 망치가 미리 향하고 있어야 점수가 올라간다. 열심히 하면 패턴이 보인다.”

이쯤 했으면 부동산시장의 패턴을 읽을 때가 되지 않았나? 패턴을 읽지 못하겠다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공연히 힘 빼지 말고 기본 점수라도 받는 것이 서민을 살리는 길이 될 수 있다. 부동산을 규제로 잡겠다는 정부에서 집값이 유독 오르는 현실 때문에 하는 말이다. jumpjump@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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