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 930 >‘주기’는 사람에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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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며칠 전 한 신문을 보다가 좀 놀랐다. 제목을 로 뽑았던 것. 쿠데타를 일으킨 반란군 수괴이자 5·18 무력 진압자에게, 비자금 수천억 원을 챙겼다가 감방에 가는가 하면 대통령 예우까지 박탈된 한 유명한 자연인에게 ‘서거’라는 높임말을 쓴 건 균형 감각이 의심스러운 편집이었다.

한데, 더 놀랐던 건 라는 이 기사 부제목. 여기에선 ‘윗사람이 세상을 떠남’이라는 뜻인 ‘별세’도 ‘사망’이나 ‘숨져’로 써야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주기’라는 엉터리 말을 쓴 것이 더욱 놀라웠던 것.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사전)을 보자.

*주기(周忌/週忌): 사람이 죽은 뒤 그 날짜가 해마다 돌아오는 횟수를 나타내는 말.(내일이 할아버지의 이십오 주기가 되는 날이다.)

그러니, 쉽게 말해 주기는 ‘제삿날’인 것. 해서, 이 ‘주기’ 앞에는 사람이 와야 한다. ‘6·25 전사자 60주기’는 돼도 ‘6·25 60주기’는 안 되는 이유다. ‘주기’ 대신엔 ‘주년’을 쓰면 된다. ‘10·26 사태 42주년/6·25 60주년’처럼….

저 ‘주기’ 말고 ‘주기(週期)’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마시라. 다시 표준사전을 보자.

*주기(週期): ①같은 현상이나 특징이 한 번 나타나고부터 다음번 되풀이되기까지의 기간.(주기가 단축되다./주기가 느리다./일 년을 주기로 반복되다./그는 삼 년 주기로 이사를 다녔다.) ②회전하는 물체가 한 번 돌아서 본래의 위치로 오기까지의 기간. ③진동하는 물체가 한 방향으로 움직였다가 다시 반대 방향으로 그만큼 움직여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 ④주기율표에 원자 번호의 차례로 배열하였을 때, 비슷한 성질의 원소가 되풀이해서 나타나는 현상.

여기 어느 뜻풀이도 ‘주년’ 대신 쓰기엔 마땅찮다. 그런데, 혹시나 싶어 ‘10·26 42주기’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봤더니, 절망스럽게도 이런 기사 제목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

그 속에서 그나마 이런 것들이 위안이라고나 할까.



‘언론(言論)’에는 말[言]이 두 번 나온다. 말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언론이라 부르기 민망하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은데….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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