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는 한·중·일 가로지르는 동아시아 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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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살아있다/민윤기

는 한·중·일을 가로지르는 동아시아 시인 윤동주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내년 윤동주(1917~1945) 순절 77주년에 앞두고서 이제껏 발표된 윤동주 관련 주요 자료와 새로 취재한 사실들을 한 권에 수록한 것이다. 윤동주의 친구 문익환 목사, 동생 윤일주, 후배 정병욱과 일본인들의 글도 상당수 있다. 1970년대 글도 보인다. 1953년 평론가 고석규의 ‘윤동주의 정신적 소묘’란 글은 윤동주 시에 대한 최초의 글로 향후 윤동주 연구의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내년 윤동주 시인 순절 77주년 앞두고
관련 주요 자료·새로 취재한 사실 수록
문익환·윤일주·정병욱 등 글 상당수 실어
민족 촛불처럼 밝힌 맑은 시 남긴 거물

윤동주는 서러운 땅, 결연한 의지의 땅인 북간도 사람이었다. 그의 고향은 옛 고구려 땅 민족정신의 구심점인 북간도 명동(明東)이다. 문익환 목사의 글에 따르면 19세기 말 구한말에 정착한 명동의 유명한 네 집안은 함경도 귀양 선비들의 학문을 이어받은, 동학을 하던 분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윤동주 집안도 그랬다. 명동에 기독교가 들어갔는데 1917년생 윤동주는 기독교와 유교(동학)를 민족애라는 용광로 속에서 완전히 녹여낸 이를테면 ‘가장 원숙한 작품’이었다고 한다. 그런 북간도의 교육 속에서 자라난 문익환은 통일운동으로 나아갔고, 윤동주는 민족을 촛불처럼 밝힌 맑은 시를 남긴 채 숨을 거두었던 거다.

‘괴로웠던 사나이,/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십자가가 허락된다면/목아지를 드리우고/꽃처럼 피어나는 피를/어두워가는 하늘 밑에/조용히 흘리겠습니다’(‘십자가’ 중에서). 문익환은 “이 시는 전 존재를 내던지는 종교적인 확신의 진솔한 표현”이라며 “이런 참말은 반드시 사건이 된다. 참말로 아름다운 시를 쓴다는 일은 두려운 일이다”라고 썼다. 문익환은 “윤동주를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언제나 넋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그게 북간도에서 자란, 같은 뿌리의 친구였다.

윤동주의 ‘아우의 인상화’라는 시가 있다. 윤동주가 “늬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라고 묻자 아우 윤일주는 “사람이 되지”라고 했단다.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그 윤일주가 말년에 이런 말을 했단다. “요즘 아버지를 자주 생각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형(윤동주)의 유골을 품고 후쿠오카에서 부산, 그리고 기차에 흔들리며 북간도 집까지 돌아오셨을까 하고….” 이 글을 쓴 일본인 이바라기 노리코는 윤동주 집안 사람들에게서 “인간의 질을 느낀다”며 “윤동주도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썼다. 그런 사람에게서 전대미문의 ‘서시’가 나왔던 것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 이 절창의 시는 일본인들까지 사로잡고 있다고 한다.

윤동주는 어린 시절 북간도에서 동시를 주로 읽었다고 한다. 그의 맑고 투명한 시의 뿌리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러던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에 들어가 스승들인 최현배 이양하 손진태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재일교포 시인 김시종은 “윤동주는 그리스도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물으면서도 키에르케고르, 프랑시스 잠, 릴케 등의 주지적인 사색, 특히 실존주의가 짙은 키에르케고르에 심취했던 지성인이었다”고 한다. 염결성의 윤동주는 1942년 일본에 공부하러 가서 끝내 해방 조국을 보지 못하고 숨졌다. 1945년 2월이었다. “아마도 자신의 수난을 각오했던 데서 윤동주의 도일을 예수의 예루살렘행과 겹쳐서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닌 듯 생각된다. 아니 동주 자신이 예수의 삶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고, 기꺼이 고난의 길을 걸어간 것처럼 생각된다.”(115~116쪽)

1943년 7월 윤동주는 동갑내기 고종사촌 송몽규와 함께 일제가 꾸민 ‘재교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그룹 사건’에 연루돼 체포됐다. 둘은 후쿠오카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매일처럼 이름 모를 주사를 맞았다고 한다. 생체 실험을 당했다는 것이다. 피골이 상접한 채로 송몽규는 눈을 부릅뜬 채 죽었으며, 윤동주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죽었다고 한다. 그 죽음이 남긴 시는 이렇게 노래한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 민윤기 책임편집/스타북스/640쪽/2만 2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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