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섭의 플러그인] 지방소멸 의제마저 이제 소멸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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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문재인 정부 말기에 접어든 요즘 행정부와 국회, 서울 언론 등에서 지방소멸과 관련한 정책이나 기획 기사가 전에 없이 눈에 띈다. 지방 입장에서 반갑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변죽만 울린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방소멸이라는 문제 자체에 대한 절박감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지방소멸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특히 수도권으로서는 언뜻 식상한 느낌마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지방소멸 문제가 지닌 양면성이다. 발을 동동 구르는 지방과 달리 정부나 수도권의 태도는 제삼자처럼 무덤덤하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몰린 수도권에서 우월 의식에 젖어 안락하고 화려한 생활을 즐기는 처지라면 더욱이 지방소멸은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절박한 지방의 공공기관 2차 이전
현 정부 허송세월, 끝내 물거품 돼

미봉책만으론 지금 추세 못 막아
수도권 자원의 강제 배분 불가피

대선 후보들, 확실한 공약 없어 실망
미래 어둡지만, 그래도 포기는 없어

임기 말인 현 정부가 최근 한두 가지 대책을 내놓기도 하고, 김부겸 국무총리가 엊그제 신설될 공공기관의 비수도권 배치를 밝혔지만, 전혀 임팩트가 없다. 역시 절박감이 문제다.

대한민국의 지방소멸은 이미 일부 지역에선 완성 단계라는 평가다. 군(郡)이나 면(面) 단위 지역을 보면 ‘지방소멸지수’ 같은 생소한 수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벌써 떠날 만한 사람은 모두 떠났다. 오갈 데 없는 고령자들만 남아 사라져 가는 마을을 지켜볼 뿐이다. 지금은 군·면 단위가 아니라 지방 중소도시의 소멸이 실질화하는 단계다. 특히 대기업이 떠났거나 지역 기반 산업체계의 전환을 이루지 못한 중소 산업도시의 쇠퇴는 이미 상당 부분 진행 중이고, 대도시의 쇠퇴도 본격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국토균형발전 전문가들은 지방소멸의 경우 우리 정부가 너무 오랫동안 방치해 온 결과, 지금은 한두 가지 대책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엊그제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연 1조 원 규모의 지방소멸대응기금 조성도 마찬가지다. 반갑기는 하지만, 문제의 본질과는 여전히 동떨어져 있다. 사라져 가는 지방에, 그것도 비슷한 처지의 지방을 서로 견줘 얼마의 돈을 쥐여 준 뒤 자체적으로 활성화 대책을 마련하라는 것은 사실상 정부의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지금은 지자체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문재인 정부의 균형발전에 대한 무성의함은 2000년대 이후 역대 어느 정부보다 심하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국회 연설을 통해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따라 122개 공공기관의 2차 지방 이전을 추진하겠다”라고 밝힌 게 2018년 9월이다. 벌써 3년도 더 지난 일이다. 그런데도 눈에 띄는 성과는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김 총리는 지난 26일 균형발전박람회에서 공공기관의 2차 이전은 쏙 뺀 채 신설될 공공기관의 비수도권 배치라는 면피성 발언으로 지방의 억장만 무너지게 했다. 현 정부에서 ‘이 문제는 끝났다’라는 얘기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에 앞서 문 대통령은 “공공기관 2차 이전은 임기 내 추진하기가 어려워 보인다”는 취지로 벌써 언급했다고 한다. 대선 정국과 임기 말 동력 상실에 따른 부담이 그 이유라는데, 조속한 시행을 고대해 온 지방으로서는 정말 허탈하고 화가 치미는 일이다. 연방제 수준의 분권을 약속했던 문 대통령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회의 개최도 가장 무관심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중 72차례의 회의 중 무려 29번을 직접 주재했으나, 문 대통령은 30차례의 회의 중 직접 주재한 경우는 딱 한 번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다음 대통령은 좀 달라질까. 현재까지는 그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게 중평이다. 여야의 대통령 후보들이 모두 균형발전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공통적인 공약이다 보니 차별성이나 절박함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이제 균형발전은 수도권이 보유한 자원의 강제 배분을 빼놓고는 백약이 무효인 지경이다. 수도권 자원은 그대로 놔둔 채 아무리 지방소멸 대책을 내놔봤자 모두 미봉책일 뿐이다. 수도권 자원을 법적인 제도 마련으로 인위적으로 나누지 않는 한, 현재 추세를 되돌리지는 못한다. 그런데 자원 배분은커녕 오히려 지속적인 신도시 조성, 규제 완화로 수도권 비대화를 부추겨 온 게 지금까지 역대 정부의 행태였다.

자원의 강제 배분은 당연히 서울 언론 등 수도권주의자의 반발을 부를 것이다. 유권자의 절반이 모인 수도권의 정치적 장벽을 넘으려면 강력한 균형발전 신념과 동기 확보가 필수인데, 현재 후보 중 누가 이 짐을 기꺼이 지려 할까. 이를 생각하면 지방소멸이라는 의제 자체의 미래도 암울한 셈이다. 그래도 지방은 끝까지 지방을 놓을 수가 없다. 숙명이기 때문이다. 안 될 줄 알면서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공자처럼 지금 대한민국의 지방도 꼭 그러한 심정이다.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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