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골드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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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숫자가 없는 인간의 삶은 생각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숫자는 생활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인류의 위대한 발명 중 하나로 숫자를 꼽는 학자들이 많으며 숫자가 인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조명하는 책도 많다.

인간 삶 속 모든 영역에서 숫자를 만날 수 있는데 가장 많이 만나는 것 중 하나가 전화번호이다. 주민등록번호와 더불어 전화번호는 사람들이 자기만의 비밀번호를 조합하는 데 가장 많이 쓰인다. 요즘 라디오 프로그램에선 청취자 이름 대신 휴대폰 뒷자리 번호를 이야기할 정도로 전화번호는 그 사람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 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억하기 좋은 휴대폰 번호, 일명 ‘골드 번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대단하다. 국내 이동통신 3사가 올해 마지막 골드번호 5000개의 주인공을 찾는 추첨 행사 참여자를 현재 모집하고 있다.

이번에 응모할 수 있는 골드 번호 유형은 1111, 2222처럼 4자리 모두 같은 숫자를 가진 ‘AAAA’ 형태를 비롯해 0001, 0002 같은 ‘000A’ 형태, 1000이나 2000 같은 ‘A000’ 형태, 1100과 2200 같은 ‘AA00’ 형태, 0011이나 0022 같은 ‘00AA’ 형태, 1234 같은 ‘ABCD’ 형태, 1212 혹은 3434 같이 ‘ABAB’ 형태와 앞번호 네 자리와 뒷번호 네 자리가 같은 형태가 있고 마지막으로 특정한 의미가 부여된 번호들이 있다.

특정한 의미가 부여된 번호로는 가장 유명한 ‘1004(천사라는 뜻)’를 비롯해 ‘1472(일사천리)’ ‘3542(사모하는 사이)’ ‘4989(사고팔고)’ ‘5004(오 천사)’ ‘7142(친한 사이)’ ‘7179(친한 친구)’ ‘7942(친구 사이)’ ‘8949(팔고 사고)’ 같은 것들이다.

SK텔레콤의 상반기 골드번호 추첨 행사에선 네 자리 숫자가 모두 같은 ‘AAAA’ 형태가 가장 인기가 많았고, LG유플러스는 앞과 뒷번호가 같은 형태가 가장 경쟁률이 높았다.

현대 사회가 빠르게 변하면서 숫자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심해지는 듯하다. 상대가 베푼 호의를 일일이 숫자로 환산해 계량하고, 인간관계조차 교환되는 숫자가 동일해야 유지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세계는 0과 1의 이진법으로 완성되는 컴퓨터 세계와 다르다. 숫자로만 해석하면 풀 수 없는 문제가 여전히 많다. 오히려 0과 1, 켜짐(on)과 꺼짐(off)으로만 분류되지 않는 무엇이 있기에 인간은 신비롭다.

김효정 라이프부장 tere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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