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존생] 서른 하나, 족구에 눈을 뜨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이재화 jhlee@busan.com ,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김보경 harufo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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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여파로 사소한 모임부터 해외여행까지 어려워진 현대인들. 자유시간이 늘어나도 특별한 재밋거리가 없어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데…. 새로운 취미에 선뜻 도전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시작할지 모른다면? <부산일보> 30대 남녀 기자가 꿈꾸던 취미를 대신 경험해 드립니다. 본격 취미 탐구 성장 프로젝트, ‘취존생(취미 존중 생활)’!


딱히 취미랄 것 없이 살아온 30년. 취미 기획을 구상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족구였다. 영화 ‘족구왕’을 최근에 다시 보기도 했고, 얼마 전 갔던 오리고기 집 근처에 여기저기 ‘족구장 완비’ 라고 적힌 걸 봐서인지 족구가 내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왜 하필 족구냐’고 묻는다면, 가장 잘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축구는 골대가 있어야 하고, 야구는 배트와 글러브가 필요하지만 족구는 공만(물론 네트도 필요하지만) 있으면 되지 않은가. 공이 없으면 빈 우유팩으로라도 하고야 마는, 가장 실용적이고도 기본적인 운동이라 생각했다.

사실 핑계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저질 체력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저질 심폐지구력이 원인이다. 운동에 영 소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체력이 영 나쁜 것도 아닌데 오래달리기를 못한다. 오래 달리다 보면 목에서 칼칼한 모래 같은 게 느껴지고, 좀 더 달리다 보면 기분 나쁜 쇠 맛이 올라오는데 내 인내력의 한계는 여기까지여서 학창시절 ‘체력장’에서도 늘 오래달리기 점수가 나빴다. 족구는 게임 내내 계속 달리지 않아도 되니, ‘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에게 “나 족구 배워보려고”라고 하니, 한참 ‘ㅋㅋㅋ’를 남발하던 친구는 영화 ‘족구왕’의 유명한 대사를 날렸다. “족구하는 소리 하고 있네.” 비웃는 친구에게 “취미 좀 존중해주라”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취미 존중 생활 프로젝트. 첫 번째 취미는 족구다.


영화 '족구왕' 스틸컷 영화 '족구왕' 스틸컷

족구하는 여자들

여차저차 종목은 족구로 정했다. 근데 여자 족구 동호회도 있나? 일단 인터넷 검색부터. 구글에 ‘부산 여성 족구’ 라고 치니 가장 첫 번째로 ‘부산 여성 족구 회원 모집’ 이라는 다음 카페글이 검색됐다. 2017년 9월에 올라온 글이었다. 카페 자유게시판에 들어가보니 17년 11월에는 ‘부산 유니크 여성족구단 창단 공지’글도 올라와 있었다. 선수는 무려 19명이나 된다고. 2주 뒤에는 ‘유니크 여성부 창단식 및 고사’ 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는데, 그 이후로는 올라온 글이 없었다. 2017년이라면 벌써 5년 전인데 아직 운영되고 있는 걸까? 혼자 고민해봤자 답을 얻을 수 없었다. 회원모집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보는 수밖에.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린 뒤 수화기 너머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번호가 바뀐 건가? 여성 족구단은 이제 더 이상 운영되지 않는 건가?’ 찰나에 생각들이 스쳤다. “여성 족구 동호회라고 해서 연락드렸는데요.” 주눅 든 목소리로 운을 떼자, 반가운 대답이 돌아왔다. “예 맞습니다.” 전화 받은 분은 유니크 족구단 하종진 회장이었다. 여성 족구단이라 여성 회장일 거라 생각했던 나, 반성해.

철저히 개인 신분은 아니었기에, 소속을 밝혔다. <부산일보>라고 하니 상대는 약간 의아해 했다. 취재를 한다는 건지, 동호회에 든다는 건지 헷갈려 하는 반응. “동호회에 들어서 취재를 하는 겁니다”라고 하자,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족구팀은 매주 일요일마다 모인다고 했다. 일정을 조율하다 1월 16일 첫 모임에 나가기로 했다. 집결 시간은 오후 2시 30분, 집결 장소는 문현배수지 옆 족구장. 전화를 끊기 전 괜히 제발 저려 “저 정말 족구가 처음인데 괜찮을까요?” 소심한 질문을 던지자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걱정 말고 오세요.”라는 말이 참 위로가 됐다.


쭈뼛쭈뼛 첫만남

2시가 지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친근하게 서로 이름을 부르며 익숙한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 여성회원뿐 아니라 남성회원도 있었다. ‘유니크’ 족구팀은 여성부와 남성부로 구성돼 있다.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은 아니지만 이런 만남의 유형을 가장 어색해 한다. 아는 사람이 없는 건 괜찮다. 그것보다 더 힘든 건 이미 끈끈한 친목을 이루고 있는 모임에 낀다는 것. 초등학생 때 두 번의 전학에서도 이미 경험해본 일이다. 정말 ‘이방인’이 된 것 같은 뻘쭘함이다. 쭈뼛쭈뼛 회장을 찾았다. 수줍게 건넨 인사에 “아, 부산일보!” 라며 반갑게 맞아주는 회장. 이런 상황에서 나를 알아봐 준 회장은 전학생을 살뜰히 챙겨주던 선생님 같았달까. 인자한 웃음과 은근히 나긋한 말투에 묘하게 마음이 놓였다.

2시 30분. 회장이 회원들을 불러 모았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환영의 박수가 이어졌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준비 운동 시간.

우선 간단히 족구장 주변을 두 바퀴 돌았다. 그 다음 족구장을 감싸고 큰 원을 그려 몸 풀기 체조를 한 뒤에 ‘팔벌려 뛰기’로 마무리. 회장은 몸풀기의 중요성을 강조, 또 강조했다. 프리미어리그 축구 선수들도 무조건 몸풀기를 한 뒤에 축구를 한다고. 몸이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다친다며, 특히나 겨울철엔 부상이 잦기 때문에 더더욱 몸을 잘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다 갑자기 “동작을 크게 하라”면서 가수 나훈아 얘기를 하셨는데, 그가 ‘노래를 잘 하려면 노래를 크게 불러야 한다’고 했다던가. 동작을 크게 해야 자신의 잘못된 자세를 알 수 있다는, 다소 난해한 비유도 드셨다.

사다리처럼 생긴 걸 바닥에 깔고 스텝 훈련이 이어졌다. 주장 수진 언니가 먼저 시범을 보였다. ‘따닥따닥’ 발을 구르며 한 바퀴, 그 다음엔 사다리 안에서 발을 모았다가 벌리며 스텝을 밟았다. 제자리에서 따라해 보면서 쉽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사다리 위에 서니 스텝이 꼬였다. 한 번 꼬이고 나니 자꾸 꼬이는 스텝. 회장님은 “족구는 ‘잔발’이 생명”이라며 이 스텝 훈련의 당위에 대해 역설했다. 내게 집중되는 시선에 땀이 삐질 났는데, 언니들은 “처음인데도 잘한다~”라며 치켜세워줬다.

추운 날 다치기 쉬우니 몸을 잘 풀어줘야 한다. 준비 운동은 크게 크게. 추운 날 다치기 쉬우니 몸을 잘 풀어줘야 한다. 준비 운동은 크게 크게.

‘똥볼’의 서막

몸 풀고 30분이 지난 뒤에야 공을 만져볼 수 있었다. 족구공은 배구공보다는 단단했고 축구공보다는 부드러웠다. 2인 1조로 짝을 지어서 한 명이 공을 던지면, 맞은편에 선 사람이 바운드 되는 공을 발로 받아내는 훈련. 공격수 포지션인 희선 언니랑 짝이 됐다. 언니가 먼저 시범을 보였다. 공을 앞으로 던지고 바운드 되는 공을 아주 가볍게 툭하고 받아냈다. 역시 ‘짬에서 나온 바이브’는 달랐다.

내 차례다.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땅에 바운드 된 공의 타이밍을 본능적으로 계산해 발을 가져다 댔다. 정확히 맞았다. 그런데 공이 언니 키를 훌쩍 넘어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공을 차려고 하는 욕심 때문이라고 했다.

족구는 축구와 달라서 공을 ‘차는’게 아니라 공을 ‘미는’게 핵심이다. 특히 초심자가 공을 차려고 하면, 나쁜 습관이 들어 고치기 더 힘들다고. 공을 밀어내려면 주걱으로 밥을 푸듯 공이 오는 타이밍에 맞춰 딱 갖다 대야 한다고 했다.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는데, 자꾸만 발이 먼저 올라가서 공을 툭 하고 차내려 했다. 자세를 의식하면 의식할수록, 자꾸만 몸에 힘이 들어가고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왼발은 더 가관이었다. 내 몸에 붙어있는 데도 왜 내 몸처럼 움직이지 않는 건지? 예전에 어느 한 독자가 내 기사에 “똥볼 차는 기자”라고 쓴 댓글이 비수가 됐는데, 지금이야 말로 진짜 ‘똥볼’만 찼다.

오른발은 그나마 받아칠 수 있겠지만, 왼발은 ‘똥볼’ 그 자체다. 오른발은 그나마 받아칠 수 있겠지만, 왼발은 ‘똥볼’ 그 자체다.

남성부 도병율 감독의 1대1 특훈이 이어졌다. 발에 힘을 ‘딱’ 줘야 한다는데 힘이 안 들어가서 자꾸만 발목이 돌아갔다. 오른발 복숭아뼈에 공이 맞아서 발을 문지르고 있으니, 한 언니가 감독에게 빽 하고 큰소리를 냈다. “감독님 애 잡겠다!”라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 발을 바라봤다. “내일 멍들 수도 있어요. 처음엔 아픈데 하다 보면 점점 괜찮아질 거예요!”라며 생긋 웃어주셨다.

서브도 연습했다. 돌아가면서 공 두 개씩 차고 대기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똥볼만 잔뜩 차댔던 터라 자신감이 바닥을 쳤는데 ”자신 있게!”라는 응원이 들려왔다. 호흡을 가다듬고 발에 힘 딱, 공을 힘껏 밀었는데 네트를 넘었다!

서브를 넣고도 놀란 내 자신. 어? 이게 왜 되지? 서브를 넣고도 놀란 내 자신. 어? 이게 왜 되지?

포지션별로 몸 풀기가 끝나고 연습게임이 시작됐다.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주장 수진 언니와 경빈 언니, 도 감독과 같은 팀이 됐다. 나를 제외한 우리 팀의 안정적인 수비와 주장 언니의 개인기 덕에 우리 팀은 초반에 경기를 리드해나갔다. 점수 차가 여유로워지자 팀원들은 내게 서브 넣어보라며 공을 건넸다. “네? 저요? 왜요?” 당황스러움과 부담감에 몸을 배배 꼬자 감독은 “우리가 이기고 있으니까 부담가질 거 없다. 아까 배운 대로만”이라며 상대편 코트 쪽으로 고개를 까딱했다.

부담스러운 시선을 느끼며 손에서 공을 놓고 발을 갖다 댔다. 잘 맞았다. 포물선을 그리며 공이 네트를 넘자 “나이스!” 하는 외침이 들렸다. 짜릿했다. 그 이후로도 수차례 서브가 이어졌다. 몇 번은 빗맞아 네트 근처도 못 갔고, 또 몇 번은 힘 조절을 잘못해 코트를 벗어났다.

2세트 때 7점 가까이 나던 점수 차가 내 서브 실수로 3점차까지 따라잡혔을 때, “저 서브 안 넣으면 안 될까요?”라며 손쉽게 회피를 선택했지만, 팀원들은 “한 번 더 해보자. 못해도 괜찮아!”라며 용기를 북돋았다.

잘 못 해도 괜찮다는 말에 진짜 못 해버리는 나. 팀의 구멍이 되지 않으려면 연습만이 살 길이다! 잘 못 해도 괜찮다는 말에 진짜 못 해버리는 나. 팀의 구멍이 되지 않으려면 연습만이 살 길이다!

이날은 나는 거의 서브 넣는 로봇이었는데, 아주 가끔 수비수 역할도 해냈다. 웬만하면 내 근처로 오는 공도 다른 팀원들이 받았다. 그런데 간혹 ‘이건 진짜 내 볼인데?’ 싶은 공들이 있었다. 그런 느낌이 들 땐 ‘공을 끝까지 보라’는 회장의 말을 떠올리며, 타이밍에 맞춰 발을 들었다. 맞았다! 얼떨결에 수비를 해내고는 내적 함성을 질렀다. ‘나 좀 소질 있는데?’

하지만 몇 순간을 제외하고는 실수 연발이었다. 내 쪽으로 오는 공에 대차게 “마이”를 외쳤지만, 공은 ‘택도 없는’ 위치에 떨어졌다. 핑계를 대자면, 머리로 받아야 하는 공이었는데 무서워서 목이 움직이지 않았다. 연습할 때 헤딩하려다 빗맞아서 1분 넘게 ‘우리하게’ 아팠던 걸 몸이 기억하는지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다.

높이 날아오는 공은 헤딩으로 받아야 한다는데, 날아오는 공을 보고 본능적으로 피해버렸다. 저기, 이건 피구가 아니야. 높이 날아오는 공은 헤딩으로 받아야 한다는데, 날아오는 공을 보고 본능적으로 피해버렸다. 저기, 이건 피구가 아니야.

그래도 팀원들의 ‘하드캐리(팀을 승리로 이끄는 역할)’로 첫날부터 짜릿한 승리를 맛봤다. 연습경기를 끝내고 나니 해가 기울고 있었다. 이 날은 첫 연습 경기만 끝내고 먼저 일어나야 했지만, 다음번엔 언니들의 이야기를 꼭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 유니크 회원들의 따뜻함이 오래도록 맴돌았다. 남성부 부회장은 “안 춥습니까?” 하면서 무심하게 핫팩을 건넸고, 한 언니는 쉬는 시간에 생수 한 병을 꺼내 쥐어줬다. 또 연습경기가 시작됐을 때는 “손 춥겠다”며 끼고 있던 장갑 한쪽을 벗어줬고, 서브를 넣을 때마다 “나이스”, 얼떨결에 공을 받아 칠 때면 환호로 화답했다. 이 따뜻한 사람들 덕분에 움츠린 마음은 사르르 녹아버렸고, 이 모임의 막내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다음 날 아침, 다리는 뻐근했지만 다행히 멍든 곳은 없었다. 집을 나서면서 생각했다. “빨리 일요일이 됐으면 좋겠다!” -다음 편에 계속

촬영·편집=이재화·김보경·정수원 PD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이재화 jhlee@busan.com ,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김보경 harufo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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