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나는 과연 얼마짜리일까?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연세가 좀 있으신 독자라면 매몰 광부 양창선 씨 사건을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1967년 8월 22일 충남 청양군의 구봉광산에서 갱이 무너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양수기로 막장에 고인 물을 퍼내는 작업을 하던 광부 양 씨는 갱 안에 매몰되었다가 9월 6일 무려 368시간 만에 구조되었다. 온 국민들이 자기 가족의 일처럼 함께 기뻐했던 것은 물론이다. 양 씨가 구출되던 갱도 입구에는 1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였고, 그가 보름 만에 세상에 나오는 순간에는 온 나라에서 한꺼번에 만세 함성이 터져 나왔다. 양창선 씨 사건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 매몰되었다가 구조된 사건으로 약 30년 동안이나 기네스북에 올랐었다. 눈치 챈 분도 계시겠지만 이 기록을 깬 것은 1995년의 삼풍백화점 사고에서 17일 만에 구조된 분이다. 매몰된 갱도에서 15일을 견딘 분이나 무너진 건물 잔해 밑에서 17일을 견딘 분이나 모두 놀랍고 존경스럽다. 그러나 마냥 놀라기만 할 일이 아니라 궁금하기도 하다. 왜 이런 사고가 2022년의 대한민국에서 또 일어나고 있는지.

매몰 양창선 씨 사건, 삼풍백 붕괴
2022년 한국 여전히 안전하지 못해
산업현장 재해 방지 중대재해법 도입
적용 현장 제한적이고 실효성도 의문
노동자 목숨을 비용으로 따지는 기업
산업재해 끊이지 않고 발생할 수도


광주에서 건설 중이던 아파트가 내려앉는 상상도 못할 사고가 일어난 지 채 한 달도 안 돼 경기도 양주의 한 석재채취장에서 토사가 무너지는 사고로 또 세 분이 목숨을 잃었다. 양주 사고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 사고가 지난달부터 시행된 법의 첫 번째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산업현장에서 인명 사고가 나더라도 현장책임자 한두 명이 처벌을 받을 뿐이었고, 그나마 집행유예가 아니면 벌금형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 왔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사고로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을 선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참 좋은 법이고, 이 법이 제대로 시행된다면 당연히 이제부터는 산업재해도 충분히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 법을 가장 반겨야 할 산업현장에서는 왠지 시큰둥한 반응이라고 한다. 법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서다. 우선 법의 내용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노동부의 통계를 보면, 약 80%의 산재 사망사고가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50명 미만 사업장에는 2024년부터 적용되고, 5명 미만 사업장에는 아예 적용되지 않는다. 법 적용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많다.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는 법의 시행 이전에 일어난 사고여서 법 적용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만약 이 사고가 법의 시행 이후에 일어났다고 가정하면 과연 처벌받아야 할 경영책임자는 누구인가 궁금하다. 과연 사법당국이 재벌 총수들을 기소하고 유죄 선고를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그렇지 못하고 현장책임자보다 조금 더 윗선의 경영진 한두 명을 더 처벌하는 정도라면 이 법을 백 번 시행한들 결코 중대재해는 막을 수 없을 것이 뻔하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산업재해가 끊이지 않고 반복되는 것일까? 양창선 씨 사건이 있고 몇 년 후에 이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연극이 있다. 그런데 연극의 대사 가운데 매우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나온다. 등장인물이 사고가 난 기업의 임원에게 진즉 안전장치를 제대로 갖춰 두었더라면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 아니냐고 묻자 이 임원은 이렇게 대답한다. 안전장치를 갖추는 데는 비용이 얼마 들지만, 사고가 났을 때 사망자 몇 명 곱하기 보상금 얼마로 계산하면 이쪽이 더 싸게 먹힌다고. 너무 참담한 이야기라서 설마 이런 일이 있을까 싶지만, 설마 있을까 싶은 일이 50년이 지나도록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것이 바로 우리들의 대한민국이다. 노동자들의 목숨을 1인당 얼마짜리로 계산하는 기업들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중대재해는 내일도 모레도 결코 멈추지 않고 또 일어날 것이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