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진 ‘코로나 그늘’… 부산·경남 개인파산, 전국 최고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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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구에서 작은 술집을 운영하는 A(51) 씨는 코로나19 이후 제대로 잠을 자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지난 2년간 뼈 빠지게 일해 왔다고 자부하지만, 임대료와 인건비 등을 내고 나면 남는 건 쌓여 가는 빚뿐이었다. A 씨에게 주어진 마지막 카드는 가게를 접고 법원에 ‘개인파산’ 신청을 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소상공인과 비정규직 노동자, 노년층 등이 절벽으로 내몰리며 개인파산 신청 건수도 같이 뛰었다. 개인파산의 증가는 전국적 현상이지만, 부산과 경남의 경우 증가폭이 더욱 컸다. 이는 위기에 취약한 경제 구조가 고스란히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1일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지법에 접수된 개인파산 신청 건수는 3126건이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인 2018년 2631건에 비해 18.8%가 증가했다.

작년 신청 건수 합하면 6834건
2018년 비해 22.5%나 증가
전국 평균 13%보다 10%P 높아
부산, 개인회생 신청 건수는 줄어
납기 연장 대출·이자, 150조 전망
파산 막을 정부 차원 대책 필요

경남을 관할하는 창원지법에 지난해 접수된 개인파산 신청 건수는 3708건으로 2018년보다 25.8% 증가했다. 지난해 부산과 경남의 신청 건수(6834건)는 2018년에 비해 22.5% 늘었는데, 이는 전국 수치인 13%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높은 수치다.

개인파산이 늘어난 반면 개인회생 신청 건수는 줄었다. 지난해 부산지법에 접수된 개인회생 신청 건수는 4673건으로 2018년 5238건에 비해 10.7% 감소했다. 부울경 가운데 비교적 대기업·정규직 일자리가 많다고 평가되는 울산의 경우 개인파산 신청 건수가 전국 평균인 13% 수준에 머물렀다.

소상공인들이 코로나19 장기화 이후 떠안고 있는 대출은 개인파산을 폭증시킬 수 있는 ‘뇌관’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올해 1월 말까지 납기가 연장된 대출과 이자의 총액은 5대 시중은행에만 139조 원이다. 부산은행 등 지역은행권까지 합하면 전국적으로 이 규모는 150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코로나피해단체연대 경기석 공동대표는 “전국의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팬데믹 상황에서 발버둥 쳤지만, 이미 파산했거나 파산 위험에 놓여 있다”며 “금융당국은 자영업자의 마지막 회생 가능성을 없애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이달 종료 예정이었던 소상공인 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를 다시 한번 연장하기로 했다. 당초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잠재 부실 대출이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한다는 압박에 코로나19 금융지원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을 방침이었다.

하지만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과 정치권·자영업자의 요구 등으로 연장 결정을 내렸다.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는 2020년 4월 처음 시행된 뒤 6개월 단위로 세 차례 연장됐고, 이번 연장이 네 번째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경영여건이 코로나 이전 수준을 여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개인파산은 노년층, 저소득, 비정규직 노동자 등에게도 위협적이다. 지난해 개인파산을 신청한 이들 가운데 60대 이상 고령자 숫자는 2013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을 정도다. 고령층 인구비율이 높고 노인 빈곤현상이 심각한 부산의 경우 이 문제가 사회 전반을 뒤흔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부산의 한 파산 전문 변호사는 “최근 지역의 추세를 보면 코로나19 이후 사업이 실패하거나 별다른 일거리를 찾지 못해 빚이 쌓여 가는 고령층 1인 가구가 개인파산을 많이 신청하고 있다”며 “개인파산·회생 제도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정부 차원에서 취약계층이 파산으로 이르지 않도록 보다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을 짜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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