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살인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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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추리소설을 읽는 건 익숙하지만 추리물을 영화로 보는 기회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영화는 연출이나 편집, 배우의 연기 등 정교하게 잘 짜이지 않으면 시시해지기 때문이다. 추리물은 역시 범인이 누구인지 끝까지 호기심이 일어야 하며, 적당한 긴장감과 몰입까지 느껴질 수 있어야 읽고 보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추리 소설의 여왕’ 아가사 크리스티가 생전에 가장 아꼈던 작품이자 본인의 경험담을 모티브로 한 ‘나일 강의 죽음’은 범인이 누구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꽤 잘 만든 추리물이 분명하다.

추리소설 원작 ‘나일 강의 죽음’
사랑·배신·돈·비밀에 얽힌 욕망
각자 살해 동기 가진 인물 군상
빼어난 이집트 풍광도 볼 거리


‘나일 강의 죽음’을 보다보면 추리물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치정 사건을 다루는 것 같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을 기반으로 진행되기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건 아닐까 싶다. 그리하여 1937년도에 쓰인 이 소설이 새롭게 각색될 수 있었을 것이다. 소설의 고전적인 부분은 현대적으로 새롭게 재현되고, 기존 추리소설에 새로운 인물들과 사건이 더해지면서 미스터리한 분위기는 더욱 고조된다. 또한 화려한 캐스팅과 아름다운 풍광까지 어우러져 영화는 소설을 읽는 듯 치밀하게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

‘에르큘 포와로’가 어떻게 명탐정이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프롤로그를 지나면, 1937년의 위태롭고 혼란한 도시 런던이 등장한다. 1920년대 세계는 경제적으로 호황을 누렸지만 1929년 월스트리트 주가 대폭락으로 많은 사람들이 파산하는 등 혼돈에 빠진다. 영화 속 비극은 자본 때문에 발생한다. ‘리넷’은 대공황 속에서 막대한 부를 늘린 집안의 상속녀로 가지고 싶은 건 무엇이라도 가질 수 있는 여성이다. 그녀는 한 파티장에서 친구 ‘재클린’의 약혼자 ‘사이먼’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얼마 후 초호화 결혼식을 올리는 리넷과 사이먼. 자신의 애인을 빼앗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재클린은 그들을 끊임없이 스토킹하며 신혼여행지 이집트까지 따라간다.

리넷과 사이먼은 재클린의 스토킹으로 목숨의 위협을 느끼지만 단 한 번의 신혼여행을 망칠 수 없어 친척과 지인들을 이집트 나일 강의 초호화 여객선으로 초대해 여행을 이어간다. 결국 리넷은 재클린의 도발에 견딜 수 없어 하며, 이집트에서 휴가 중인 포와로에게 자신의 신변을 살펴달라는 부탁을 한다. 하지만 우려는 현실이 되어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예리한 관찰력과 뛰어난 통찰력의 명탐정 포와로는 곧바로 조사에 착수하게 된다. 여객선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이기에 범인의 존재가 쉽게 밝혀질 거라 예상하지만, 이 사건은 간단치 않다. 여객선 안에 있는 모든 인물들이 살인을 저지를 만한 동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살인사건이 영화 중반부에 발생하기에 추리물의 재미를 기대하는 관객들은 다소 실망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범인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욕망을 들춰보는 데 초점을 가한다. 즉 영화는 추리를 푸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사랑과 배신, 돈으로 얽힌 채무 관계, 비밀을 간직한 인물들의 군상에 집중하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살인의 이유가 있기에 자신이 범인이 아님을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친구인 줄 알았던 이를 의심하거나 해하고, 또 그 와중에 무언가를 얻기 위해 살인자와 공모하는 등 인간의 욕망을 가감 없이 확인시킨다.

이 영화에서 추리물보다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부분은, 이집트 나일 강을 배경으로 한 빼어난 풍광이다. 장엄한 분위기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비롯해 나일 강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 그리고 이집트의 역사를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만끽할 수 있는 건 이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마지막으로 케네스 브래너는 ‘오리엔트 특급살인’에 이어 ‘나일 강의 죽음’까지 감독과 주연을 맡으며 추리물에 특화된 감독이자 배우임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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