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어리석은 지도자에게 보내는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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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희 디지털미디어부장

민간인의 탈출을 위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임시휴전은 포격의 시작으로 허무하게 끝났다. ‘우크라이나 극우 민족주의자가 탈출을 막았다.’ ‘러시아가 민간인 보호 약속을 팽개쳤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했다. 전쟁은 매우 참혹하지만 누구에게는 기회의 순간이요, 누구에게는 뚜렷한 목적이 있는 비즈니스인 것은 분명하다. 물론 그 틈바구니에서 가장 피해를 많이 받는 이들은 민간인이다. 전쟁이 나면 어린이, 장애인, 여성, 소수민족 등이 가장 먼저 위험에 노출된다. 그래서 인류는 말한다. '아무리 좋은 전쟁도 나쁜 평화보다 나을 수 없다.'

정의가 무너진 광기 중심의 사회나, 이성이 혼돈에 빠지는 대재난 상황일 때도 마찬가지인데 대체로 사회적으로 약자가 희생된다. 한국전쟁만 보더라도 우리 군인(유엔군 포함) 전사자는 17만 명 정도인데 민간인(행불자 포함) 사망자는 77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인 1923년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한 관동대지진 때도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탄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퍼져 한국인 유학생 등이 3000~6000명가량 학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국제정세 잘못 읽은 푸틴의 오판
무고한 양국 국민만 희생양 취급
강대국 이해관계 얽히고설키며
걷잡을 수 없는 상황 만들어 내
21세기에도 패권 쟁탈전 인류
평화가 전쟁보다 나은 줄 알아야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에서 가장 안전한 사람은 '군인'이라는 말이 정설로 통할까. 동유럽의 먼 나라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참혹함이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통해 중계되고 있다. 전쟁 발발 초기 우크라이나 CCTV를 통해 24시간 생중계하는 유튜브 채널은 현실 상황이 아닌 한 편의 영화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격화하면서 참혹한 외신 사진을 보며 '푸틀러 푸틴'에 적개심마저 인다.

이번 전쟁은 왜 발발했는가. 역사학자 등의 다양한 의견을 살펴봤다. 우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 정책이 한 원인이다. 2차대전 뒤인 1949년 창설한 나토는 미국과 서유럽 국가가 가입해 소련과 당시 사회주의 국가인 동유럽 국가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국제기구다. 나토는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동진을 거듭하고 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턱밑까지 군사적 위협이 닥친 것이다. 쿠바에 소련 미사일 배치 시도가 있었을 때 미국이 쿠바에 최후통첩한 역사를 알면 역지사지 할 수 있다.

좀 더 시각을 좁혀 보면 2014년 크림반도의 러시아 편입이다. 이곳은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하자는 주장에 80% 이상의 주민이 찬성했다. 원래 러시아 땅이었으니 그랬을 수도 있는데, 연이어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서도 분리 독립 요구가 발생한 것. 러시아인이 많은 이 지역 갈등은 내전으로 이어졌다. 돈바스 분쟁은 2014년과 2015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지역이 독립하는 대신 고도의 자치를 상호 보장하는 민스크협정을 맺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우크라이나와 반군의 무력 분쟁은 끊이지 않아 지금까지 1만 6000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그러던 차에 '나토 가입'을 공약으로 2019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당선됐다. 러시아 입장에서 군사적 적대 기구인 나토에 가입하겠다고 헌법까지 개정한 우크라이나는 실질적 위협 요소라고 착각한 모양이다. 대한민국에서 '선제타격'이 옳다는 안보 포퓰리즘에 들뜬 착각이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듯 말이다.

푸틴은 네오나치를 핑계로 언급했다. 돈바스 분쟁지역에 우크라이나 민병대 형식으로 투입된 네오나치의 만행은 물론 알려져 있다. 실제 우크라이나에서 정보 책임자로 네오나치가 임명되기도 했다. CIA의 네오나치 지원설도 있었다. 그러나 푸틴은 전쟁을 택하지 않았어야 했다.

베트남전의 시작을 떠올린다.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도 1995년 회고록에서 (미 군함이 공격당한)통킹만 사건은 미국의 자작극이라고 밝혔다. 1991년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저지를 명분으로 시작한 걸프전도 비슷했다. 2004년 이라크 전역을 샅샅이 수색한 다국적 사찰단은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최종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거짓 정보로 시작된 전쟁에 이라크 민간인 20만~25만 명이 희생됐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모든 유럽 국가들은 그동안 주민 복지와 삶의 질 향상에 투입하던 예산의 상당수를 앞으로는 국방비로 돌려야 한다. '폭군' 러시아의 실질적 위협 때문이다. 비교적 싼 값에 사용하던 러시아의 천연가스 대신 미국의 셰일가스를 사야 한다. 러시아 경제 제재 방침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 때인 2018년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의 ‘에너지 패권주의’ 선언이 마침내 이번에 달성된 것인지는 모른다. 분쟁 이익은 누군가 챙기겠지만 평화로웠던 21세기 세계는 이제 3차대전의 위기에 봉착했다.

아들이 군 복무 중이다. 부모는 두렵다. 한반도에는 평화가 절실하다. 누가 대결과 전쟁을 부추기는가.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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