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라인’ 넘어선 편 가르기… 이젠 ‘뺄셈’ 아닌 ‘덧셈’ 정치를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20대 새 대통령 과제] (1) 더 절실해진 통합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5년 전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는 사상 초유의 전직 대통령 탄핵으로 갈라진 나라를 하나로 묶겠다는 의지로 충만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탄핵의 당사자인 박근혜 대통령의 그 5년 전 당선 일성도 대통합과 탕평이었다. 진보와 보수의 지분이 거의 비슷하게 양분된 정치 지형에서 지지층만 바라보는 통치로는 어떤 비전도, 개혁도 구두선에 그칠 뿐이라는 깨달음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통합을 외쳤던 정부의 마지막은 그 깨달음을 실천으로 옮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또한 보여 준다. 촛불 광장의 염원을 안고 출발한 문재인 정부는 이번 대선 레이스 기간 내내 50% 넘는 정권교체 여론에 직면했다. 이는 부동산 폭등, 좌초한 한반도평화프로세스 등 정책적 실패뿐만 아니라 ‘내로남불’과 ‘편 가르기’로 통합은커녕 진영 갈등을 내전 상태로 몰아간 데 대한 중도층의 반감이 적잖이 작용했다. 우리 사회 원로들과 각 분야 전문가들이 새로 탄생하는 차기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한결같이 ‘통합’과 ‘협치’를 언급하는 이유다.

‘조국 사태’를 도화선으로 폭발한 정치적 양극화로 인한 국론 분열 양상이 레드라인을 넘어섰다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들린다. 이번 대선은 그 집약체였다. 시대 정신과 비전은 온데간데없고 네거티브 공세가 선거전을 지배했다.

각 후보의 크고 작은 흠결은 신빙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녹취록을 자양분 삼아 더 큰 음모론으로 커졌다. 다름은 선악으로 재단됐고, 상대 후보는 ‘악마화’됐다. 양 진영의 ‘복수’ 정서는 커질 대로 커졌다. 누가 되든 상대 후보의 ‘감옥행’을 기정사실로 언급할 정도다. 국민의 절반이 나머지 절반을 공존 불가능한 적으로 보는 사회에 어떤 희망이 있을까.

이 지경에 이른 데는 문재인 정부의 과오가 크다.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2020년 12월 24~28일 조사한 결과, 우리 국민 52.6%는 “문재인 정부가 갈등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차기 정부는 이런 반성 위에서 진정성 있게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

‘그럼 뻔히 보이는 적폐를 그대로 묻어 둬야 한다는 말이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통합을 국정 최우선 순위로 여기는 지도자라면 일견 모순돼 보이는 사법적 정의 실현과 통합이라는 가치 속에서 균형 잡힌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쌍방 간 증오를 증폭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권력을 더 가진 쪽의 결단이 필요하다. 통합이야말로 ‘지지층 정치’를 탈피하려는 지도자의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다. 이번 대선이 끝까지 ‘박빙’으로 흘러간 것은 새 권력에게 더 겸손하고, 통합을 위해 가일층 치열한 노력을 경주하라는 신호라고도 해석할 수 있겠다.

다행히 각 후보는 이번 대선 레이스에서 한결같이 협치를 통한 국민 통합에 힘쓰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야당 역시 발목잡기로 반사이익을 거두려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또한 불문가지다. 전문가들은 차기 당선인의 통합 의지를 드러내는 첫 시험대로 당파와 지역을 초월한 탕평인사, 통합내각에 있다고 진단한다. 이와 함께 승자독식 구조 해소를 위한 정치 개혁 과제, 특히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을 위한 개헌 논의가 진전될지도 관심사다.

박명림 연세대 정치학과 교수는 “차기 대통령 당선자는 인수위부터 통합형으로 꾸려 나라의 근본과제와 공통 목표, 공통 인재를 널리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