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당선인 전 상서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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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익 지역사회부장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한 오늘. 인류의 미래를 제대로 보여 준 명작, 영화 ‘인터스텔라’를 떠올린다.

그들이 황량한 지구에서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우주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대통령 당선인은 그토록 바라던 청와대에 앉기 전, 그 이유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바이러스·산불·전쟁… 범인은 ‘기후변화’

당선인 임기, 더 큰 재앙 막을 골든타임

구원·사익·보은 묻고 생존 향한 헌신으로

비극 대물림 끊은 위대한 대통령으로 서길

당선인은 당장 인수위를 어떻게 꾸리고 내각을 누가 맡을지, 코로나19를 어떻게 극복할지 구상하느라 단 1초도 여유가 없을 것이다. 머릿속은 행복한 삶을 약속한다며 쏟아냈던 숱한 공약들로 가득할 테다.

한데 지금 대한민국 국민에게 가장 큰 두려움과 위기는 무엇인가.

수십 년 전 공상과학영화 작가들은 2022년 즈음을 이렇게 상상했다. 차들이 하늘을 날고 첨단 과학·의료기술이 웬만한 질병은 다 낫게 해주는 시대다. 그런 장면을 보며 자란 대략 50세 이하 국민은 전쟁, 대화재, 창궐하는 바이러스 따위는 중세 영화, 역사교과서에만 나오는 일인 줄 알았을 것이다. 슬프게도 수돗물을 믿지 못해 물을 사 먹고, 큰 병에 걸릴지 몰라 보험 쇼핑을 하고, 바이러스와 미세먼지에 마스크조차 벗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2022년 지구는 우리에게 마지막 경고장을 던지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들이 사전투표를 하려다가 만난 종이상자와 비닐봉투 투표함에 분노할 때, 경북과 강원도에선 생사를 건 산불과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며칠 전만 해도 동시다발 대형 산불은 호주나 미국발 외신의 먼 나라 얘기에 불과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2년이 넘도록 변신하며 기세등등한 와중에, 러시아는 세계대전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우크라이나를 집어삼키고 있다.

찬찬히 생각하면 우크라이나 전쟁도, 코로나 바이러스도, 살인 폭염도, 잿더미만 남은 산불도 모두 기후변화가 낳은 괴물이다. 어떤 재난이 닥칠지 몰라 늘 불안한 우리는 날것 그대로인 기후변화의 위력을 이미 맨눈으로 목격하고 있는 셈이다.

수시로 발생하는 산불의 어마어마한 연기가 기후변화를 촉진시켜 더 큰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는 예측은 이미 상식이다. 터지기 직전인 풍선처럼 팽창한 인류로 인해, 생태계는 끊임 없이 새로운 바이러스를 탄생시켜 균형을 찾으려 할 것이다. 미세먼지, 환경호르몬 등으로 범벅이 된 인류의 면역력은 점차 보잘것없게 될 것이다. 최악의 상황이 닥치면 식량과 에너지를 차지하려는 열강의 끔찍한 전쟁이 끝내 파국을 부를지 모를 일이다.

최근 유엔환경계획(UNEP)은 의미 있는 보고서 하나를 내놓았다. 세계 석학들이 참여한 보고서는 소음(Noise)과 대화재(Blazes), 생태계 교란(Mismatches)이 인류의 ‘3대 위협’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UNEP는 산불이 2002년부터 2016년까지 유럽연합(EU) 국가 규모와 비슷한 산림을 불태웠고, 2100년까지 50% 이상 폭증할 것이라 예측했다. 충격적인 것은, 이 보고서에 등장한 호주 산불의 위성 사진이 최근 동해안 등지에서 발생한 산불의 모습 그대로라는 점이다. 한반도가 더이상 기후 재앙의 무풍지대가 아니라는 얘기다.

급격한 도시 개발과 팽창이 낳은 소음, 그리고 대화재와 생태계 교란을 방치하면 인류는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많은 과학자들은 이르면 21세기 안에 인류의 멸망을 예고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도 평균 기온이 2~3도 오르면 생물 종 54%가 멸종 위기에 처한다고 밝혔다. 이미 절반의 동식물 서식지가 고위도, 고지대로 이동했고, 해양 생태계 사정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무릇 국가 지도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먼바다의 ‘쓰나미’를 예측하고 대비책을 마련하는 지혜와 역량을 갖춰야 한다. 바라건대, 당선인은 그간의 구원이나 보은, 사사로운 정파의 이익을 과감히 묻어 둬야 한다. 기후 위기 이슈를 색깔론에 가두는 이들 역시 더 이상 용납해선 안 된다. 특정 정치 진영의 이익에 휘둘리기에는 너무나 중차대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최근 부산에서는 하나 뿐인 지구를 지키려는 시민들의 작은 실천이 시작돼 참 다행이다. 분야별 전문가, 시민단체 활동가 등 여러 인재들이 모여 사단법인 ‘자연의 권리찾기’를 결성한 것이다. 이들은 우선 기후 위기의 실상을 알리는 영화제로 첫발을 내딛고 힘을 보태려 한다.

그러니 당선인은 어떤 과제보다 앞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되새겨 보길 바란다. 그러고는 거침 없이 세계를 선도할 ‘K-기후변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발로 뛰는 대통령의 진심을 느낀 국민들은 기꺼이 당신의 뒷배를 자처할 것이다. 지구의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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