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나홀로 폭락 양파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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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를 까거나 썰면 으레 눈이 따가워진다. 이어 반사적으로 눈물이 나기 마련이다. 양파에 들어 있는 휘발성 물질인 프로페닐스르펜산 때문이다. 이 성분이 양파 껍질이 벗겨지고 잘릴 때 공기 중으로 올라와 눈에 들어간 뒤 화학작용을 일으켜 따가움과 눈물을 부른다.

때로는 사람이 아니라 양파가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날 리는 만무하지만, 혹자들이 ‘양파의 눈물’이라고 표현하고 있어서다. 이 말은 농민이 애써 재배한 양파의 가격이 크게 떨어질 경우 자주 쓰인다. 양파값이 폭락한 최근 상황도 그렇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짓눌렸던 소비심리 회복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에 따라 국제 유가와 곡물·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이 여파로 지난달 국내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3.7%나 상승했다. 2012년 2월 이후 10년 만에 5개월 연속 3%대 상승률을 기록해 물가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물가가 오름세를 보이지 않은 품목이 드문 상태다. “월급과 아이들 성적 빼고는 다 올랐다”는 세간의 우스갯소리가 실감날 정도다.

반면에 현재 양파값은 지난해 이맘때에 비해 무려 80%가량 하락했다. 식품과 농산물 등 온갖 물가가 크게 오르는 마당에 유독 양파값이 폭락한 게다. 생산량 순서로 따져 토마토, 수박에 이어 세계 3대 채소로 꼽히는 양파의 체면이 땅에 떨어진 셈이다. 어찌 된 영문일까?

원인은 장기화한 코로나19 확산세 탓에 외식산업이 침체되고 학교 급식이 중단돼 양파 수요가 급감한 데다 저장 양파 재고가 평년 대비 14% 이상 증가한 데 있다. 이 바람에 우리나라 양파 시배지인 경남 창녕과 인근 합천·의령, 전남 무안·고흥, 제주 등 양파 주산지 농민들은 봄양파 수확철을 맞아 시름이 깊다. 50년 만의 겨울 가뭄에 시달리며 힘들게 양파를 키우고도 가격의 추가 하락을 우려해 멀쩡한 양파밭을 갈아엎는 농가가 늘고 있다. 경남도와 창녕군이 양파 소비 촉진을 위해 할인 판매 지원사업에 나섰으나 임시방편일 뿐이다.

잊을 만하면 가격 폭등과 폭락을 되풀이하는 ‘양파 파동’이 빚어져 소비자 또는 농민을 울린다. 양파값이 크게 오르면 양파를 대량 수입하고, 많이 내리면 국민 혈세를 들여 폐기하는 방법으로 뒤늦게 가격을 잡는 정부 대책이 반복된다. 어느 누구도 악순환을 거듭하는 양파값 때문에 눈물 흘리는 경우가 더는 없도록 보다 신속하고 확실한 수급·가격 안정 정책이 나오길 바란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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