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너무 진지하면 재미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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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희 공모 칼럼니스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유행한 때가 있었다. 당시엔 소확행과 더불어 ‘힐링’이라는 단어도 자주 사용했다. 행복, 힐링, 이러한 단어는 치열한 일상에서 일정 시간 동안만이라도 평온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 바람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만큼 이런 단어들을 찾지 않는다. ‘재미’라는 단어가 행복을 대신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재미’를 보통 ‘잼’으로 줄여서 말한다. 재미가 있으면 ‘유잼’, 재미가 없으면 ‘노잼’, 아주 재미있으면 ‘대존잼’이라고 표현하며 온라인에서뿐만 아니라 일상 대화에서도 자주 사용한다. 또한 ‘재미가 있다 혹은 없다’는 감정 표현의 형용사 역할을 넘어 ‘좋다’는 호의적인 표현에도 두루 사용한다. 예를 들어 빵을 먹었는데 맛있으면 ‘빵맛이 유잼’인 식이다.

지금 당장 재미있는 게 최상
2030세대 ‘찰나의 즐거움’ 선택
잠시나마 고단한 현실 잊게 돼

무겁고 거창한 담론은 부담
재미에 어설픈 진지함이 낄 때
재미의 진정한 의미 잃는 법


본격적으로 2030세대가 재미 추구에 몰입하기 시작한 건 지코의 ‘아무노래’가 히트를 쳤던 2020년 상반기 즈음과 겹쳐진다. ‘왜들 그리 다운돼 있어?’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분위기가 겁나 싸해. 왜들 그리 재미없어?’로 상황의 어색함을 직설적으로 알린 뒤 ‘아무 생각 하기 싫어’로 마무리된다. 노래 가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복잡하고 불편한 것은 멀리하고 직관적이고 단순한 재미를 좋아하는 젊은 세대의 감수성과 맞닿는다.

생각해 보면 행복, 힐링, 안녕, 이런 것들은 너무 거창하다. 거창하고 진지해서 불편하고 재미없다. 행복하다고 자부하려면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일정 수준의 여유가 있어야 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든다.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힐링 역시 내적으로 수양을 하든 외적으로 소비를 하든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단박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경험의 누적이며 일종의 체험적 가치다. 참고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어렵사리 얻은 충만함이 모든 게 빠르게 변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얼마나 지속될지 불확실한 것이 요즘 세상 아닌가.

반면 재미는 순간적인 즐거움이다. 경험보다는 상태에 가깝다. 그 유효 기간이 극히 짧더라도 대부분이 노잼인 인생에서 잠깐이나마 삶을 밝혀 주는 ‘유잼 모멘트’가 반가울 따름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오래 지속되며 빛나는 순간을 기대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런 확실하고 안정적인 행복은 인생에서 존재하지 않으리라 믿는 편에 가까운 것 같다. 차라리 자주 재미를 느끼면서 인생의 유잼을 더 많이 늘려 가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매 순간 재미를 좇고 재미에 집착하는 마음가짐이 생기면 자연스레 진지함에 거부감이 든다. 이번 대선에서 거대담론이 사라졌다는 비판에 수긍하면서도 별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어쩌면 그런 주제는 너무나 진지해서 누군가 갑자기 심각한 이야기로 무거운 분위기를 잡았을 때 자리를 피하고 싶은 심정과 유사한 마음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보다는 전태일의 풀빵 정신을 잇겠다는 취지로 붕어빵 모자를 썼던 심상정 후보자를 보고 피식했다. 태권도복을 입고 발차기와 격파쇼를 펼친 이재명 후보자도 웃기기는 했다. 그런 면에서 윤석열 당선인은 꽤나 진지한 캐릭터를 고수했다. 결과적으로 진지함이 승리하였으니 재미와 당선은 별개의 문제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한편 2030세대는 재미를 추구하면서도 재미가 가볍고 얄팍하다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재미는 그런 가볍고 얄팍한, 부담 없는 영역으로 남겨 두어야 한다. 그런데 어쩌다 재미에 과도한 진지함이 첨가되어 재미가 실종되는 사건들이 일어난다. 예컨대 최근 MBTI를 활용한 기업 채용이 그렇다. 부모 세대가 ‘소띠들이 성실하지’라는 식의 믿음으로 십이지를 따지고 언니 오빠 세대는 혈액형과 별자리를 분석해 타인의 성향을 추측하기도 했는데, 성격 유형 검사인 MBTI는 그보다는 신빙성이 높지만 여전히 인간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 이론으로서 파악하기에는 ‘믿거나 말거나’ 식에 가깝다.

그런데 MBTI가 채용 시장에 영향력을 발휘하여 ‘특정 MBTI는 지원 불가’ ‘특정 MBTI 우대’와 같은 자격이 되는 현상이 벌어졌다. 기업에서는 한정된 시간에 지원자의 성향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고 취지를 밝혔으나 취업 준비생들은 심심풀이로 재미 삼아 보던 검사를 구직자 평가와 같은 객관적인 지표로 활용한다는 것에 황당해했다. 친구와 서로 MBTI를 공유하며 재밌는 수다는 가능하지만 회사 면접장에서 MBTI를 물어보는 건 재미와 전혀 무관한 상황인 것이다. MZ세대가 재미를 추구하는 건 맞지만 재미도 낄 데 끼고 빠질 데 빠질 줄 알아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끝까지 재미를 잃지 않고 지키는 방법인 것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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