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키트’ 미리 준비하고 ‘켄넬 훈련’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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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재난 대처법

(왼쪽부터) 강원 동해시 묵호동의 전소된 주택 앞에서 집을 잃은 개 한 마리가 배회하고 있다. 강원 동해시 초구동의 산불 피해 주택 한쪽에서 거위와 오리들이 검게 그을린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아래 사진은 지난 4일 강릉시 옥계면에서 발생한 산불. 연합뉴스

역대 최장기 산불로 기록된 울진·삼척 산불이 진화됐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주택과 농·축산 시설 등이 소실되고 2만923㏊의 산림 피해가 발생했다. 이번 산불처럼 재난은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재난이 발생하면 목줄이 풀린 채 거리를 배회하는 개를 종종 목격하곤 한다.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대피소로 이동해 위기를 극복해간다. 그럼 주인과 함께 대피하지 못하고 남은 동물들은 어디에서 지내게 될까. 대한민국은 현재 4가구 중 1가구가 반려동물을 양육할 만큼 양육 인구가 늘어나고 있지만, 반려동물을 동반할 수 있는 대피소는 없다. 대피소도 없고, 명확한 동물 재난 대처법도 없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재난을 대비하기 위해 반려인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봤다.

동물 관련 재난 대피 계획, 국내 전무 실정
재난 시 주인이 직접 대피 계획 세워야
미국·호주, 대피 매뉴얼·대피소도 존재
다른 지역에 맡길 곳 미리 확보해 두길

국내 반려동물 동반 대피소 없어

울진·삼척 산불 이전에 2019년 4월 발생한 고성과 속초에서 발생한 큰 산불이 있었다. 이 산불로 약 4만2000여 마리의 동물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 중 반려동물의 대부분은 갑작스럽게 번진 산불로 주민들이 함께 대피하지 못해 목줄에 매인 채 목숨을 잃었다. 일부 주민들은 개들이 화마에 목숨을 잃을까 목줄을 풀어놓고 가기도 했다. 이번 울진 산불에서도 목줄 없이 돌아다니는 개들이 발견됐다. 이에 동물보호단체들이 재난 지역을 방문해 떠돌아다니는 개들을 포획해 안전한 곳에 옮기는 등 구조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목줄을 풀어주는 방법은 불을 피할 순 있어도 궁극적인 대처가 될 순 없다. 뿐만 아니라 거리를 떠도는 동물들은 관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사고, 유기동물 발생 등의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번 산불뿐만 아니라 지진, 홍수 등 다양한 재난 상황은 갑작스레 발생하곤 한다. 각 지자체는 비상사태의 성격에 따라 적절한 대피소를 마련해 놓고 있지만, 현재 국내 재난 대처법을 보면 동물 관련 재난 대피 계획은 전무하다. 행정안전부의 ‘애완동물 재난 대처법’에 따르면 반려동물 소유자들은 가족 재난 계획에 반려동물을 포함하라고 되어있지만 대피소에는 들어갈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피소에 입장 가능한 동물은 맹인 안내견 같은 봉사용 동물만 가능하다. 따라서 재난 시에는 주인이 직접 반려동물 대피 계획을 세워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반려동물 동반 대피소는 없으며, 민간단체나 개인에게 의존하고 있다.



외국, 재해시 반려동물 방치하면 처벌

그럼 해외 상황은 어떨까? 국가 인구보다 반려동물 수가 더 많다고 알려진 호주는 재난 시 반려동물 안전 대책이 마련돼 있다. 우선 주마다 반려동물을 위한 대피 매뉴얼이 존재하고, 반려동물과 함께 머물 수 있는 대피소도 많아 찾기도 수월하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하고 구체적인 재난 단계별 지침도 존재한다. 만약 피치 못할 사정으로 집에 반려동물을 두고 가야 한다면 반려동물의 종류와 수, 보호자의 연락처 등을 현관이나 우편함에 적어두면 동물보호단체가 해당 동물들을 구조하기도 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로 반려동물 동반 가능 대피소가 존재한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60만 마리의 동물이 목숨을 잃은 후 ‘반려동물 대피 및 구조 표준 행동’을 마련한 미국은 강아지, 고양이뿐만 아니라 새, 뱀, 도마뱀, 햄스터 등과 같은 다양한 반려동물에 대한 지침을 마련했다. 플로리다 주는 인공재해 및 자연재해 발생 시 개를 묶은 채 외부에 두는 행위를 1급 경범죄로 처벌하는 법안을 제정하는 등 반려동물을 버리고 가는 사람들을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다.

지진과 해일, 쓰나미 등이 많이 발생하는 일본은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이후 ‘반려동물 재난 관리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재난 대피 요령을 예방 단계부터, 재난 발생, 대피, 피난처에 이르기까지 7단계로 나눠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반려동물을 대피소에 동반하는 것은 각 보호소의 재량에 따라 운영되고 있는데, 현재 반려동물 동반을 허용하는 대피소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반려동물 대피 가이드라인 시급해

재난은 갑자기 찾아오는 만큼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재난 상황에 대비해 반려인들도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반려동물 생존 키트를 미리 준비해두자. 지난 2020년 전주시는 반려동물 재난위기 대비를 위해 전국 최초로 반려동물 생존 키트를 제작해 눈길을 끌었다. 생존 배낭에는 비상식량과 용품, 프로필 카드, 가족사진, 이동장, 밥그릇, 목줄, 하네스, 입마개, 물티슈, 휴지, 배변봉투, 시트, 고양이 모래, 넥카라, 탈취제, 담요, 복용약 등이 담겼다.

긴급 상황 시 빠른 이동이 가능할 수 있도록 켄넬 훈련도 필수다. 켄넬 안에 있으면 반려동물에게 보다 안정감을 줄 수 있고, 대부분의 장소가 이동장 안에 있을 경우 입장이 가능한 만큼 꼭 필요한 훈련이다. 또한 자신의 지역 외부에 거주하는 친구나 친척들에게 비상시 반려동물을 맡길 수 있는 곳도 미리 알아두자. 비상사태 기간 동안 담당 수의사나 조련사가 동물을 위한 대피소를 제공하는지 알아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동물자유연대 관계자는 “반려동물 재난 대처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사람 챙기기도 힘든데, 동물이 뭐가 중요하냐’는 말을 하는데, 반려인들에게 반려동물은 가족”이라며 “실제로 미국 카트리나 허리케인 당시에는 반려동물과 함께 머물 곳이 없어 대피하지 않고 피해를 그대로 입은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국내에는 반려동물 동반 대피소도 없지만, 있다고 한들 반려동물 물품이 없어 함께 머물기 힘들다”며 “반려동물 양육 인구 수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정부와 지자체가 이를 대비한 훈련과 가이드라인을 차근차근 만들어나가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이상윤 선임기자·김수빈 부산닷컴 기자 suvel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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