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이 답이다] ‘죽음의 문턱’ 탈출한 고성 유기동물, 또다시 벼랑 내몰리나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현장이 답이다] 고성 동물보호센터에 무슨 일이?

80마리가 적정 수준인 230㎡ 면적의 임시 보호 시설에 무려 180여 마리의 유기견이 들어찬 있는 가운데 유기견 한 마리가 케이지 안에서 불안한 눈빛으로 방문객을 지켜 보고 있다.

무분별한 안락사와 부실한 관리 실태가 드러나 ‘최악의 보호소’란 오명을 썼던 경남 고성군 동물보호센터. 지자체와 반려인의 노력으로 ‘유기동물 천국’으로 탈바꿈한 것도 잠시, 최근 ‘동물 학대’ 논란이 불거지며 다시 지탄의 대상이 돼 버렸다. 천국과 지옥을 오간 지난 1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센터 신설·지자체 직영화 추진
주민 반대·예산 삭감 등에 제동
창고 개조한 임시 시설 포화
연말 100마리 안락사 불가피

■인간·동물 모두에게 불행한 곳

16일 오전 10시께 고성군 고성읍 우산리 들녘. 농한기를 맞아 한적한 시골 마을이 개 짖는 소리로 시끌하다. 진원지는 농업기술센터. 뒷문에 들어서자 ‘동물보호센터’ 팻말이 붙은 창고가 눈에 들어온다. 고성군이 주인에게 버림은 개나 고양이를 위해 만든 임시 보호 시설이다. 낯선 이의 등장에 더 날카롭게 짖어대는 놈들. 가까이 가자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뒷걸음질이다.

전국에 있는 동물보호센터 280곳 중 지자체가 직영하는 곳은 단 58곳. 이곳도 그 중 한다. 그동안 민간에 위탁하다 2020년 9월 직영으로 전환했는데, 민간위탁 당시 86.7%에 달했던 안락사율이 4%로 급감했다. 반대로 입양률은 49.4%로 전국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 그러나 임시 시설로는 밀려드는 유기동물을 수용하기엔 역부족. 얼마 못 가 한계에 직면했다.

80마리가 적정 수준인 230㎡ 면적에 무려 180여 마리가 들어찼다. 3.3㎡도 안 되는 우리 1칸에 4마리가 기본. 이마저도 부족해 작은 이동식 케이지를 닭장처럼 층층이 쌓아 올렸다. 혈변 등 전염성 질환이 있는 10여 마리는 야외 컨테이너에 따로 격리하고, 덩치가 크고 성질이 사나운 놈들은 아예 밖으로 빼내 관리 중이다. 갖은 노력에도 동물 간 다툼은 빈번해졌고, 급기야 새끼를 물어 죽이는 안타까운 사고까지 발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접 마을에선 너무 시끄럽다며 아우성이다. 가까운 민가와는 직선거리로 150m 남짓. 한 주민은 “시도 때도 없다. 조용한 동네다 보니 더 크게 울려 퍼진다”고 하소연했다.

임시보호소 관리를 맡은 허재훈 씨는 “창고를 개조한 시설이라 방음이나 통풍이 잘 안 되는 데다, 비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다 보니 더 많이 싸우게 된다”면서 “사람이나 동물 모두에게 힘들고 불행한 시간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의회 몽니에 센터 신설 백지화

동물보호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의 부실 실태 고발을 계기로 반려동물 친화 도시를 선포한 고성군은 직영화와 함께 전문 센터를 신설하기로 했다. 당초 회화면 봉동리를 예정지로 점찍었지만, 인근 주민들이 ‘혐오 시설’이라며 난색을 보였다. 이에 현 임시보호소가 있는 농업기술센터 안을 대체지로 낙점했다. 공공기관 부지에 들어서면 접근도 쉽고, 혐오 시설 이미지도 탈피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러자 이번엔 군의회가 주민 공감대 형성이 먼저라며 반대했다. 갑론을박이 이어졌고, 센터 건립에 필요한 ‘2022년도 정기분 공유재산관리계획안’이 군의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센터 건립은 백지화됐다.

군은 급한 대로 4억 5000만 원을 투입해 임시보호소 환경을 개선하기로 했다. 수용 공간을 넓히고 이중문과 이중창, 벽·천장에 흡음재를 시공해 소음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군의회가 2억 5000만 원을 삭감해 제동이 걸렸다.



■소음 민원에 100마리 안락사?

이를 두고 동물보호센터가 여당 군수와 야당이 다수인 군의회 간 정쟁의 희생양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양측은 민선 7기 출범 이후 주요 현안마다 부닥치며 내내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결국, 군은 보호 중인 유기견 20마리에 대한 안락사를 예고했다. 그러자 전국의 반려인들이 발 벗고 나섰다. 입양 문의가 잇따랐고, 다행히 모두 새 주인 품에 안겼다. 하지만 겨우 발등의 불만 껐을 뿐. 이대로는 연말까지 최소 100마리가 죽음의 순번을 기다려야 한다.

비글구조네트워크는 일련의 행위는 명백한 동물 학대라며 고성군수와 현직 군의원 11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특히 군의원에 대해선 “의정 활동을 악용해 고성군수의 권리행사를 고의로 방해했다”며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을 추가했다.

유영재 대표는 “실제 소음 관련 민원은 3, 4건뿐이다. 이를 핑계로 반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소음이 문제라면 방음이 완벽한 센터가 더 필요하다”면서 “군과 군의회가 더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사진=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