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시대 문화풍경] 세르게이 로즈니차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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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이 초청됐다. 제1차세계대전부터 보스니아 전쟁까지 사라예보에 깃든 전쟁의 비극과 상흔을 주제로 한 옴니버스 영화다. 에피소드 13편 가운데 세르게이 로즈니차(Sergei Loznitsa)의 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내레이션이나 배경음악이 없다. 1990년대 초반 보스니아 전쟁 당시 군인들의 사진 위에 2014년 사라예보의 도시풍경과 사람들의 일상이 무심하게 겹쳐질 뿐이다. 무장군인이 쇼핑하는 사람들과 오버랩되는 지점에 전쟁과 평화, 삶과 죽음, 진실과 거짓이 맞닿아 있다. 벨라루스에서 태어난 로즈니차는 우크라이나에서 자랐다. 공대를 졸업하고, 인공지능 개발자로 일하다 영화에 뜻을 두었다. 러시아국립영화학교를 졸업하고 다큐멘터리 22편과 영화 4편을 제작했다. 전쟁과 학살을 다루면서도 반전주의나 휴머니즘, 민족주의를 맹목적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가 익숙하게 믿고 있는 진실이 구축되는 과정에 주목한다.

유럽의 빵바구니라 불렸던 우크라이나는 스탈린시대 대기근 참사인 홀로도모르(Holodomor)를 경험했다. 1991년 소련 해체 후 독립했지만 친러세력과 친유럽세력 사이에 갈등이 격심했다. 2013년 친러 성향의 대통령이 유럽연합과 무역협정을 연기하면서 유로마이단 혁명이 촉발됐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원한 것은 반러도 친유럽도 아닌 자유 그 자체였다. 키이우 독립광장은 삶과 죽음이 교차한 자유 투쟁의 전장이었다. 로즈니차는 90일간 전개된 대중들의 시위를 경험하면서 국가의 자유로운 정신이 어두운 잠에서 깨어나고 있음을 에 기록했다. 유로마이단 혁명으로 대통령이 탄핵되고 헌법이 개정되었지만, 친러세력과 친유럽세력 간 갈등이 증폭됨으로써 돈바스전쟁이 일어났다. 는 2014년 분리독립을 원하는 반군세력과 정부 간의 내전을 다룬 극영화다.

이즈음 러시아 침공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항전은 키이우 독립광장을 넘어 우크라이나 전역에 걸쳐있다. 우크라이나의 자유를 향한 피의 투쟁은 여전하다. 대피처가 아니라 탄약을 달라는 대통령, 어린 딸과 애끊는 이별을 감내하는 아버지, 아장걸음으로 국경을 넘는 아기들, 사격 연습을 하는 팔순의 할머니, 맨몸으로 탱크를 막아서는 사람들. 소설이나 영화가 아닌 지금 여기의 현실이다. 우크라이나의 항전은 자유와 인간 존엄성에 대한 근본적인 탐문이다. 눈과 귀로 생생하게 보고 듣는 전쟁의 광기는 이제 우리의 이야기다. 최근 세르게이 로즈니차가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전장으로 향했단다. 그는 이 전쟁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늘 그랬듯이 전황의 사실적인 재현보다도 평범한 사람들의 전쟁 경험과 일상의 순간들을 카메라에 담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영화는 곧 역사가 된다. 로즈니차의 전쟁은 오늘도 역사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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