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 같은 세상, 변혁의 관점에서 지도 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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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 혹은…/프레드릭 제임슨

는 마르크스주의 문화비평가 프레드릭 제임슨의 기념비적 저작이다. 제임슨의 이 저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용어를 20세기 후반기 대중문화를 설명하는 핵심 용어로 각인시킨 전범 같은 책이다.

물론 이즈음 ‘포스트모더니즘’ 운운은 이전처럼 맹위를 떨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사회적 징후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포스트모던 사회·문화 ‘깊이 없음’ 비판
주변부와 제3세계가 대안이자 탈출구

요컨대 당대 우리 시대는 현기증 날 정도다. 정치의 올바름은 실종된 듯하고 가짜뉴스들이 판치며, 매일 새로운 상품이 쏟아지고, 사람들은 무언가 색다른 것, 자극적인 것을 찾는다. 너무 복잡하고 갈피 잡기 힘든 거대한 미로 같은 세상이다. 이런 것이 포스트모던 시대의 징후이다.

제임슨은 미로 속에 포기하지 말고 부단하게 ‘인식적 지도 그리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대의 전체적이고 객관적인 윤곽을 잡아야 한다는 거다. 그냥 윤곽을 잡는 것이 아니라 변혁의 관점에서 잡아야 한다고 한다. 제임슨의 ‘인식적 지도 그리기’는 루카치의 용어로 ‘계급의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임슨은 마르크스 루카치 사르트르,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학파로 이어지는 문화적 마르크스주의의 맥을 잇고 있다.

제임슨의 ‘지도 그리기’에 따르면 포스트모던 시대의 본질은 1960년대 이후의 후기자본주의 사회이며, 포스트모더니즘은 후기자본주의 문화논리다. 이것이 책 제목에 표현돼 있다.

그가 보기에 포스트모던 사회와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깊이 없음’이다. ‘부유하는 기표’라는 말이 그것인데 ‘깊이’를 ‘표면’이 대체했다는 거다. 고흐의 구두 그림은 농촌의 비참함을 그대로 드러내지만 앤디 워홀의 ‘다이아몬드 가루 신발’은 결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는 거다. 워홀의 것은 그저 무처럼 캔버스에 매달려 있는 죽은 사물들이라고 한다. 의미에 닻을 내리지 못하고 표면을 미끄러질 뿐이다.

제임슨은 이런 미끄러짐, 깊이 없음의 원인이 ‘개인의 죽음’ ‘개인의 종말’에 있다고 본다. 부르조아의 자본이 공장에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금융자본으로 탈지역화, 전 지구화하면서 갈피 잡기 힘든 미로 세상이 됐다는 거다.

탈출구는 없는가. 제임슨은 주변부, 제3세계가 대안이라고 말한다. “주변부는 마지막으로 생존하는 사회적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주변부의 가능성이다. “오늘날 유일하게 진정한 문화 생산은 세계체제 사회적 삶의 주변부에서 이뤄지는 집단적 경험에서 끌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후기자본주의를 전복할 수 있는가. 그렇지는 않다. 자본주의가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기 때문에 그것에 제동을 걸고, 갈수록 파편화하는 세상에 맥락을 잡는 것이 미약한 대안이다. ‘깊이 없음’과 짝을 이루는 것이 ‘역사성의 쇠퇴’이다. 책은 문화 이데올로기 비디오 건축 문장 공간 이론 경제 영화 등에 걸쳐 후기자본주의 문화논리를 파헤치고 있다. 프레드릭 제임슨 지음/임경규 옮김/문학과지성사/814쪽/4만 2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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