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정권 심판에 이르게 한 대통령의 착각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박동원 폴리컴 대표

스스로 ‘촛불 정부’라고 칭한 문재인 정권의 촛불은 꺼졌다. 탄핵으로 말미암은 보수의 몰락으로 한동안 보수 재집권이 힘들어 보인 게 사실이다.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년 집권론’을 설파했고, 심지어 할 수 있으면 더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계획은 국민에 의해 저지당했고, 집권 연장의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어떤 착각이 20년 장기 집권을 꿈꾸게 했고, 6개월 초보 정치인에게 정권을 내주는 전대미문의 결과를 초래했을까.

첫째, 우린 옳고 정의롭다는 착각이다.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내부 고발이 터지자 당시 김의겸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엔 사찰 DNA가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환경부 공무원의 블랙리스트, 공수처의 야당 정치인과 언론사 기자 등 무더기 통신 조회는 이를 무색하게 했다. 여당 소속 단체장들의 연이은 성추행과 여당 의원들의 땅 투기 등으로 작년 4·7 보궐선거도 패했다. 조국 사태, 윤미향 의원의 정대협 공금 유용 의혹까지 스스로 정의롭다던 정권의 내로남불은 정권심판론을 촉발했다.

초보 정치인 당선, 전대미문 대선
현 정권의 여러 착각이 빚은 결과

소통 없는 오만과 독선 주요 원인
선악 이분법, 진영 논리 탈피 중요

대화·타협으로 자기 함정 피해야
윤 당선인, 꼭 타산지석으로 삼길


둘째, 권력으로 적폐를 청산한다는 착각이다. 문 정권은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을 국정과제 1호로 정하고 담당 부처를 법무부로 명시했다. 조국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에 발탁하고 공수처를 만든 이유다. 권력 강화에 의한 적폐청산은 필히 독단적 강압과 인적 청산을 부른다. 적폐란 묵은 폐습이다. 문화와 습속은 제도 개선과 의식 제고로 극복되는데, 권력으로 강제하다 보니 울산시장 선거 개입 논란 등 스스로 적폐가 되는 자가당착에 빠지고 말았다.

셋째,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착각이다. 문 정권이 역대 가장 큰 규모의 ‘청와대 정부’를 만든 것은 적폐청산과 국가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의지였다. 다른 생각은 합의해야 하는데 언론중재법, 5·18 역사왜곡특별법 같은 시대착오적 법안 강행은 민주주의를 왜곡했다. 정작 국가개혁은 손도 대지 않고 소득주도 성장, 부동산 정책 등 현실과 괴리된 정책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다 결국 정권을 내주었다.

넷째, ‘촛불혁명 정부’라는 착각이다. 대선에 패한 뒤 문 정권을 옹호해 왔던 한 인사는 이번 패배의 원인이 촛불혁명의 대의인 ‘정치검찰의 쿠데타’를 진압하지 않은 문재인 정부의 배반 탓이라 했다. 추운 겨울 국민이 들었던 촛불은 박근혜 정부가 무너트린 국가시스템 복원과 민주적 절차의 회복을 바랐던 것이지, 무소불위의 국가 권력으로 정의를 실현하라는 게 아니었다. 문 정권의 무리수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대권 후보로 밀어 올려 당선에 이르게 했다.

마지막으로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착각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3·1절 축사에서 김대중 정부를 민주정부 1기라고 칭해 논란을 일으켰다. 문 대통령은 집권 내내 건국 논쟁, 백선엽 장군 친일 행적 비판, 동학운동까지 끄집어내며 지난 역사를 소환했다. 역사적 선악 이분법으로 자기 진영에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하며 지속해서 국민 간 분열을 일으켰다.

권력이 착각에 빠지면 독선과 오만이 깊어진다. 국민은 대통령 개인의 신념을 실현하라고 뽑아 준 게 아니다. 생각과 이해가 다른 개인과 집단을 잘 추슬러 나라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끌어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대통령이 착각을 일으키는 첫째 원인은 열혈 지지자들이다. 뭘 해도 지지를 거두지 않는 집단이다. 문 대통령은 열혈 지지자들을 ‘양념’으로 옹호하며 자기 신념에 빠졌다. 열혈 지지자들의 뜻을 국민의 뜻으로 오해하면 신념이 강화된다.

두 번째 원인은 대통령 스스로가 하는 ‘역사와의 대화’다. 자신의 행위가 지금은 욕을 먹을지라도 역사가 인정해 줄 거라는 착각이다. 역사는 대통령에게 임무를 준 적이 없다. 역사에서 얻어야 할 것은 권력의 오만과 독선에 대한 교훈이지, 스스로 역사가 되려고 하면 안 된다. 세 번째 원인은 ‘국민의 뜻’에 대한 착각이다. 국민의 뜻은 천편일률적이지 않다. 모든 국민을 만족할 정책은 없다. 다양한 이해와 요구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소되어야 접점이 찾아진다.

윤석열 당선자가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에서 국민들의 일상 공간 속으로 나오려는 이유는 착각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선거 유세 때 외친 통합과 협치는 결국 소통에서 나온다. 끊임없는 소통 노력만이 오도된 자기 확신에서 벗어나 다양한 국민의 이해와 요구를 무리 없이 정책에 반영하고, 국민을 통합해 목적지에 이르게 할 것이다.

배는 별을 보고 항해하지만 목적지는 항구다. 별에 이르겠다고 착각하지 말고 현실의 항구에 다다르려고 노력해야 한다. 대통령이 오도된 자기 확신에 빠지는 순간 정권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