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할버슈타트 공습과 우크라이나 침공’ 연관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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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4월 8일 할버슈타트 공습 / 알렉산더 클루게

‘눈에 띄는 것은 폐허의 공간 위로 드리운 정적이다. 지하실들에 아직도 불길이 살아 있어 석탄고에서 석탄고로 끈질기게 땅 밑에서 이동해가고 있기 때문에 이 지루한 모습은 거짓이다. 시신 수색대가 일하고 있다. 불에 탄 것에서 나는 강력하고 조용한 냄새가 도시를 뒤덮고 있지만, 며칠이 지나면 익숙하게 느껴진다.’

연합군, 1945년 독일 도시 폭격 정당화
러, 우크라 침공도 기이하게 정당성 역설

1945년 4월 8일 독일의 소도시 할버슈타트. 이미 전세가 독일의 패전으로 기울어진 상황에서, 완전한 무방비 상태에 놓인 이 도시 위로 연합군의 폭격기 215대가 날아와 대량의 폭탄을 풀어놓고 간다. 단 몇 십 분의 공격으로 도시는 완전히 초토화된다. 종전 막바지 몇 년간 160여 개가 넘는 독일 도시에 폭격이 쏟아져 60만 명의 비전투원이 사망했는데, 할버슈타트 폭격은 그 일부였다.

<1945년 4월 8일 할버슈타트 공습>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불과 4주 전, 당시 열세 살이던 저자 알렉산더 클루게가 살던 독일의 소도시 할버슈타트에서 벌어진 무차별 폭격에 대한 이야기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담아냈다. 1932년 생인 저자는 독일 뉴 저먼 시네마를 대표했던 영화감독이자 소설가, 문화비평가, 사회학자, 법률가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은 폭격으로 인한 집단적 파국이라는 현실을 문학적으로 구현해낸 예외적이면서도 선구적인 결과물로 평가된다.

전쟁의 본질을 드러냄으로써 오늘날까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는 폭격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넘어, 문학과 사회적 책임의 문제, 그리고 인간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파괴적인 경험을 문학적으로 어떻게 그려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 등 다양한 고민거리를 안겨준다.

교회 종탑에 올라 폭격기들이 다가오는 상황을 보고하다가 경악에 사로잡힌 두 여성 보초의 이야기, 파괴된 고향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나섰다가 스파이로 몰려 붙잡힌 남자의 일화, 도시를 초토화시키기 위해 폭탄을 떨어뜨리는 ‘노하우’와 ‘구체적 과정’에 대한 서술, 폭격 피해를 당한 독일인에 대한 미국 연구소의 심리 조사 등 할버슈타트 공습과 연관된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 자료들과 가공한 자료들이 뒤섞인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회고, 목격담, 인터뷰, 토론, 보고서 등 상이한 형식으로 서술되는데, 텍스트 사이사이에 사진, 포스터, 삽화, 지도, 폭탄 도해 등 다양한 이미지들이 삽입되어 있다.

그동안 연합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폭격을 철저히 정당화하는 논리를 펼쳐왔다. 이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진 적도 없다.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그 후로 일본 원폭 투하, 한반도를 석기 시대로 되돌려놓았다는 한국 전쟁에서의 폭격, 베트남 폭격,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폭격으로 이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끝에는 과거로부터의 학습을 통해 스스로의 ‘정당성’을 기이하게 역설하고 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자리한다. 과거의 폐허 위에서 무언가를 끝없이 건져 올리려고 했던 저자의 노력은 깊은 울림을 준다. 알렉산더 클루게 지음/이호성 옮김/문학과지성사/239쪽/1만 4000원.

천영철 기자 c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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