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대통령 사저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5월 9일 퇴임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경남 양산 평산마을 사저가 가림막을 걷고 모습을 드러냈다.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건축물은 밝은 회색 톤 외벽과 푸른색 지붕이 주변 자연환경과 어우러진다는 평이다.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자연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를 담았다고 전해진다.

때맞춰 지난주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구 달성 쌍계리 사저에 입주했다. 첫 주말 사저 주변에는 인파가 몰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고향 김해 봉하마을로 돌아왔을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 정치사에는 전직 대통령들의 잔혹사만큼 사저를 둘러싼 논란 또한 끊이지 않았다. 집이라고 쉬운 우리말로 하면 될 것을 굳이 사저라는 어려운 한자어로 권위를 앞세운 자체가 국민들 눈높이에 맞지 않다.

논란의 시작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희동 집이다. 재임 중이던 1981년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대규모 사저 수리비용을 국고로 충당하면서 ‘연희궁’이라는 비난을 자초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는 부동산실명제법 위반으로 특검의 대상이 되는 불행한 역사를 남겼다.

고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울 ‘상도동’ ‘동교동’ 사저는 오랜 민주화 운동으로 한국 정치사에 주목받는 공간이었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은 IMF 외환위기로 사저 신축과 입주 과정에서 국민들의 환영을 받지 못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사저는 자식들의 재산분쟁으로 구설에 올랐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은 대개 퇴임 후 자신이 살던 고향집으로 간다. 닉슨 전 대통령은 방 9개, 욕실 14개가 딸린 대저택으로 들어간 반면 카터 대통령은 고향 조지아주 플레인스에 자신이 지은 침실 두 개짜리 집에 산다. 시카고 출신인 오바마는 퇴임 후 자녀 학업 때문에 워싱턴에 방 9개짜리 고급 월셋집을 얻었지만 호화 논란은 없었다. 트럼프 정도가 퇴임 후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로 옮겼는데 주민들이 이웃되기 싫다며 반발해 논란이 됐다.

독일인들의 사랑과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전 총리가 퇴임 후 자신이 살던 베를린의 평범한 아파트에서 남편과 손수 빨래를 하며 산다는 사실은 우리에겐 꿈같은 이야기다.

미국에서 최고의 직업이 전직 대통령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 국민들은 언제쯤 행복한 전직 대통령, 성공한 전직 대통령을 볼 수 있을까. 강윤경 논설위원 kyk93@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