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 년 방치된 ‘동래부사 선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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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동래부사 유심의 공적을 기리는 선정비가 부산 외곽의 밭 사이에 오랜 기간 방치돼 있어 문화재 관리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다른 지역에 있던 같은 선정비는 부산박물관에서 지정 문화재로 관리되고 있지만 이 선정비는 개발 예정지에 포함돼 관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20일 부산 해운대구 반여동 부산도시철도 4호선 반여농산물시장역과 불과 1km 남짓 떨어진 밭 사이에서 ‘동래부사 유심 선정비’를 찾았다. 높이 1.5m, 폭 61cm 크기의 비 정면에는 한자로 ‘부사 유공심 청덕선정 만고불망비’라고 새겨져 있지만, 풍화로 알아보기 쉽지 않았다. 두 마리의 용이 마주보고 있는 형태의 ‘이수’ 부분은 오랜 기간 침식된듯 시커멨다. 선정비 주변에 알루미늄 울타리가 쳐져있지만 문화재 안내문조차 없었다. 인근 주민에게 물어보니 “예전부터 서 있긴 하지만 어떤 비석인지는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정3품까지 지낸 관료 ‘유심’의 비
반여농산물시장 인근 밭 사이
안내문 없고 풍화로 글씨도 흐릿
문화재 가치 있어 보존 필요 지적

29일 부산 해운대구청 등에 따르면, 유심은 1649년부터 1651년까지 동래부사를 역임했다. 동래부사 직후 경상 감사로 승진했고, 나중에 정3품 벼슬인 ‘도승지’까지 올라간 인물이다. 통상 지방관리 퇴임 이후 세우는 선정비는 부산에 40여 개가 남아있다. 유심 선정비는 동래부사 선정비로는 최초로 당시 부산의 전신인 동래부의 7개 면에 모두 총 7개가 세워졌고 이 중 2개만 남았다. 선정비 중에 규모가 크고 조선 시대 선정비 문화를 엿볼 수 있어 문화재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머지 하나는 동래읍성 서문이 있던 동래구 KT 동래지점 건물 뒤에 있었다. 이 선정비는 2001년 도로 확장 공사 당시 훼손의 우려가 있어 부산 남구 부산시립박물관 야외로 옮겼다. 규모는 높이 2.3m, 폭 81cm 크기로 선정비로는 큰 편이다. 보존 상태가 좋고 문화재 가치를 인정받아 부산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됐다.

반면 반여동 선정비는 2000년대 초반 발견된 이래로 문화재 지정은커녕 밭 사이에 20년 가까이 방치돼있다. 게다가 선정비가 서 있는 위치는 센텀2지구 개발 예정 지역이다. 지난해 문화재청이 해운대구청에 이 비를 이전하라고 통보했지만 상황은 마찬가지다. 해운대구청 관계자는 “문화재는 최대한 기존에 있던 곳 인근에 보존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조언대로 향후 센텀2지구 조성 이후 개발부지 내 근린공원으로 옮겨 문화재 지정 등의 보존 방법을 찾을 예정이다”고 밝혔다.

한국해양대 국제해양문제연구소 김강식 교수는 “반여동에 있는 유심 선정비는 2000년대 들어 뒤늦게 발견됐지만, 조선 시대 선정비 양식을 알 수 있는 문화재적인 가치가 있는 만큼 부산시나 해운대구청 차원에서 연구와 함께 보존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성현 기자 kk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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