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청기와집을 또 지을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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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 문학평론가

비록 말주변은 없지만, 절박한 우화 한 편을 말해 보겠다. 한 마을에 이장 선거가 있었다. 마을 주민의 절반 가까운 이들이 반대한 이장이었지만, 어려운 상황에 선출된 만큼 그에 대한 기대는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장 당선자는 주민의 바람을 여지없이 깨버렸다. 집 없는 사람을 위한 대책을 내놓을 줄 알았는데, 아직 이장 자리에 오르기 전부터 예비 이장은 보란 듯이 자기 집부터 짓겠다고 선포했다.

마을 사람들은 물었다. 왜 멀쩡한 집을 두고 새로운 집을 지으려고 하느냐고. 그러자 이장은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모호한 말을 남기고, 자신의 이사 계획을 밀어붙였다. 마을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산 밑에 있는 청기와집은 멀쩡했고, 그 이상으로 훌륭했고, 무엇보다 다른 이들의 집을 침범하지 않았다. 그러나 새로 이사 가고 싶다는 강가의 집에는 다른 사람들이 살아야 했고, 근처 주민들이 불편해했다. 무엇보다 그 이사에는 막대한 이사 비용이 소요되었다. 사람들은 다시 항의했다. 그러자 이장은 먼저 살던 집은 마을 사람들에게 돌려준다고 말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멀쩡한 집을
새집으로 바꾸자고 주장하는 것은
돈 낭비·오류 호도한 이상한 계산법

바꾸는 것, 새것 얻는 것 능사 아니며
정당한 의식만이 공간 바꿀 수 있어



하지만 그 집을 돌려받아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자리에 가난하고 집이 없는 사람을 위한 임대 아파트를 지을 수 있을까, 아니면 새로운 신도시를 만들어서 공동으로 살 수 있는 새 마을을 지을 수 있을까. 더구나 그렇게 되면 바뀔 이장 다음에 올 이장은, 과연, 새로운 이장이 지었다는 강가의 집에 계속 살려고 할까. 다음 다음 이장 역시 이사 계획부터 반포하지 않을까. 어쩌면 산 아래 있는 파란 기와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을까. 바뀐 이장들은 이제 어디에서 살지를 선거 공약에 포함해야 할지도 모른다.

공간이 의식을 조율한다는 의견은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공간이 의식을 좌우한다는 말만 믿고 공간을 바꾸려고만 드는 사람은, 그 어떤 공간의 힘도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평생 집을 바꾸고 공간을 바꿀 수 없는 이들에게 너무 큰 실례가 아닐까. 마을 사람들의 절반이 그를 이장으로 뽑은 이유는 이장이 되고 난 다음에 자신이 살 새집부터 지으라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멀쩡한 집을 두고 다시 거대한 한 채의 집을 더 짓고, 그리고 나서는 쓸 데도 마땅하지 않은 옛집을 주민들에게 돌려주겠다는 그럴듯한 말로 생색이나 내라는 뜻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이사를 하는 비용도 잘못 산정되었다. 새집을 꾸미고 옛집을 버리고 새집에 들어갈 다른 이들을 내쫓고 다시 짐을 꾸려 옮기는 비용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5년 후에 다시, 우리는 그렇게 옮긴 새집에서 옛집으로 다시 이사가는 마을 이장을 만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단순 계산해도 지금 대충 어림짐작한 비용의 두 배가 들 것이며, 다시 5년이 흐르면 3배가 들 수도 있다. 집은 편안하게 살기 위하여 마련되어야 할 공간이지만, 공무를 맡을 때는 자기 편안함이 우선이 될 수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멀쩡한 집을 새집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장은 다른 사안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을 신념이라고 우기면서 바꾸려고 할 것이다. 바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며, 새것을 얻는 것만이 대안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지난 5000년의 역사와 또 지난 50년의 역사 그리고 가까운 5년의 역사에서도 숱하게 깨달았다. 우리는 5년 후에 다시 이사하느라고 법석을 떠는 대통령을 만나고 싶지 않으며, 몇 달 후에도 불필요한 돈을 낭비하며 이상한 계산법으로 ‘남는 장사’라고 오류를 호도하는 당선인을 만나고 싶지 않다. 정당한 의식은 공간을 바꿀 수 있으며, 참된 진실만이 그 공간에서 올곧게 살아남을 수 있다. 명심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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