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 풍경] 메이데이, 노동의 안과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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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경기 남양주시 전태일 열사 묘역의 흉상. 연합뉴스 경기 남양주시 전태일 열사 묘역의 흉상. 연합뉴스

하이든 교향곡 제45번은 황당하게 끝맺는다. 마지막 악장 중반쯤 곡이 아다지오로 느려지면 연주자들이 하나둘 자리를 뜬다. 당황한 지휘자는 이들을 붙잡거나 질타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지막에는 아무도 남지 않는다. 일을 마친 연주자들이 차례로 무대에서 퇴근해 버린 이 곡에는 뒷날 ‘고별’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하이든은 왜 이 곡을 작곡했을까? 하이든은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궁정악장으로 일했다. 에스테르하지는 헝가리의 베르사유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여름궁전을 지어 음악회를 열곤 했다. 매년 여름이면 하이든과 궁정악단 음악가들은 이곳에서 일을 해야 했다. 1772년에는 여름이 다 가도록 주인이 본궁으로 돌아가지 않아 단원들도 여름궁전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하이든은 기지를 발휘해 이 곡을 작곡했다. 단원들은 자신이 연주해야 할 부분이 끝나면 보면대의 촛불을 끄고 무대에서 퇴장했다. 이 공연을 관람한 에스테르하지는 이튿날 단원 모두에게 휴가를 허락했다. 세상에 이토록 낭만적인 쟁의가 어디 있을까.

전태일은 부르기만 해도 저린 이름이다. 환풍기와 조명등조차 갖추지 않은 열악한 환경에서 피를 토해가며 죽도록 일하고도 굶주림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고발한 평화시장 재단사다. 낭만적 퍼포먼스가 아니라 화염의 혈탄으로 말이다. 전태일이 불꽃 속에서 요구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근로기준법 준수다. 근로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지켜달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권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는 외침은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다운 세상에 대한 꿈이었다. 전태일 열사의 삶과 꿈을 다룬 애니메이션 〈태일이〉는 성심병원 침상 위에서 남긴 그의 마지막 말로 끝맺는다. “어머니, 배가 고파요.”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노동자들의 요구가 철쭉처럼 선연한 이 계절에 전태일이라는 이름이 더욱 슬프고 그리운 까닭이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으로 노동, 작업, 행위를 들었다. 악단 연주자든 미싱 보조공이든 생존을 위해 사물을 생산한다. 이것이 노동이다. 작업은 생산한 사물의 유형적 세계와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 노동과 작업이 먹고사니즘이나 자기만족의 차원에서 벗어나 공적 영역에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현상하는 것이 바로 행위다. 휴가를 달라,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요구를 통해 노동은 비로소 행위가 되었다. 노동운동사에서 전태일이 갖는 가장 큰 의미다. 궁정악단의 낭만적 쟁의행위는 산들바람처럼 해소되었지만 전태일의 외침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인간을 한갓 기계의 부품으로 여기는 인식이 팽배하고 일터에서 죽음으로 내몰리는 일도 잦다. 오월 첫날은 근로자의 날이라 불리며 여태 제 이름을 찾지 못한 메이데이다. 노동의 본질과 의미를 되새기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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