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하루 전… 학원차에 치여 120m 끌려간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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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이 답이다] 거제상동초등 사고 현장

경남 거제상동초등학교 스쿨존 교통사고 현장 확인에 나선 거제시의회 김두호 의원이 주민들과 함께 현장을 둘러보며 예방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하필 어린이날 하루 전에 그런 사고가….”

8일 오전 10시께 경남 거제시 거제상동초등학교 후문 인근 도로. 아이 손을 잡고 건널목 신호를 기다리던 학부모 이선주(가명·42) 씨는 안타까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불과 나흘 전, 이곳에서 발생한 끔찍한 사고의 기억 탓이다.


스쿨존서 학원차 신호위반
현장엔 단속 카메라조차 없어
운전자, 사고 2시간 뒤 경찰 출석
도주 의도성 따라 특가법 적용


■단속 카메라 없는 사각지대

지난 4일 오후 1시 50분께였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이 학교 1학년 A(8) 군이 학원 통학차에 치여 크게 다쳤다. 사고 지점은 학교 후문에서 50m 정도 떨어진 건널목. 학교를 끼고 오른쪽으로 굽은 도로를 지나면 만나는 오르막길이다. 보행자 신호등이 녹색불이라 건널목에 들어선 순간 노란색 승합차가 A 군을 덮쳤다.

신호 대기 중이던 학원차가 보행자 몇몇이 지나가자 적색 신호를 무시하고 출발한 것이다. 오른쪽 앞 범퍼에 부딪혀 쓰러진 A 군은 차량 하부에 매달려 120여m를 더 끌려간 뒤 튕겨 나왔다.

이후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던 A 군을 주변을 지나던 주민이 발견, 119에 신고 했다. 구조대 도착 당시 A 군은 머리 한쪽이 심하게 쓸린 상태로, 얼굴은 피투성이 였다. 뇌출혈이 심해 응급처치 후 곧장 부산대학교병원 외상센터로 옮겨진 A 군은 현재 중환자실에 있다. 상태는 여전히 위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는 “하교 시간만 되면 학원차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라 안전 사고 우려가 컸던 곳”이라며 “인근 주민은 물론 학교에서도 거제시에 단속 장비를 늘려 달라고 여러 번 건의했지만 늘 뒷짐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사고 구간은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이지만 과속(시속 30km 초과)이나 신호 위반을 감시·단속할 카메라가 없다. 편도 1차로인 데다, 후문 쪽이라 차량 통행량이 많지 않다는 이유다.

초등학교를 둘러싼 4면이 모두 도로인데, 정문 앞 4차로 도로만 단속 중이다. 학교 관계자는 “당장 CCTV 설치가 어려우면 불법 주·정차 단속이라도 자주 해 달라고 했지만 크게 바뀐 건 없었다”고 했다.

결국, 보다 못한 시의회가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서기로 했다. 이날 주민과 함께 현장 확인에 나선 김두호 시의원은 “아이들 보행 안전이 최우선”이라며 “집행부와 협의해 CCTV와 승·하차구역(일명 픽업존)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민식이법·세림이법’ 적용될까

사고 후 아무런 조처 없이 현장을 떠났던 학원차 운전자 B(55) 씨는 2시간여 뒤 경찰의 출석 통보를 받고 인근 지구대에 출석해 조사 받았다. 이 자리에서 B 씨는 “A 군을 보지도, 사고를 인지하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민식이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어린이보호구역 내 어린이 치사상의 가중처벌) 적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이 법은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형,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 ‘세림이법’ 위반 여부도 조사 중이다. 세림이법은 2013년 3월 당시 세 살이던 고 김세림 양이 어린이집 통학차량에 치여 숨진 사고를 계기로 제정된 어린이 안전 관련 법률이다. 이에 따라 어린이 통학차량에는 인솔 교사가 반드시 동승해야 한다. 사고 당일 학원차에는 원생 10명이 타고 있었지만, 인솔자는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도주 의도성이 있었는지를 따져 특가법 적용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며 “(인솔자 부재) 그 부분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글·사진=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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