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카데미와 봉준호, 그리고 ‘2차 인지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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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식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얼마 전 봉준호 감독 영화들을 다시 보면서 ‘2차 인지혁명’을 떠올렸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인지혁명’이라 했다. 이로써 우리 사피엔스는 지구 최상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하는 것처럼 구성한 ‘가상의 실재’를 통해 수많은 사피엔스가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국이나 자본주의, 종교나 문화 등이 인지혁명의 결과들이다.

봉준호의 영화를 ‘계급’과 ‘탐욕’의 코드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영화에는 숨겨진 코드가 있다. 그는 ‘플란다스의 개(2000)’에서 반려동물을 통해 인간과 동물의 공존 문제, ‘괴물(2006)’에서는 상상동물을 통해 환경 오염과 생태계 교란의 문제, ‘설국열차(2013)’에서는 기후 변화의 문제, ‘옥자(2017)’에서는 사육동물을 통해 동물의 살과 인간의 식탁 문제를 절묘하게 다뤘다. 뿐만이 아니다.

특히 72회 칸(2019) 황금종려상과 92회 아카데미(2020) 감독상 및 작품상을 수상한 ‘기생충(2019)’은 빛을 보면 안 되는 지하 존재가 지상으로 나와 빛을 보게 될 때 우리 사회가 어떤 혼란과 충격에 휩싸이게 되는지를 절묘하게 그렸다. 극지방에는 영구동토층이 있다. 그런데 최근 그곳이 녹고 있다. 거기에는 엄청난 양의 메탄가스가 있다.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와 더불어 지구 온난화 주범이다. 뿐만이 아니다. 어떤 과학자는 영구동토층에는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바이러스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점에서 근세(박명훈 분)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기생충’의 그로데스크하고 카니발적인 축제 장면은 영구동토층의 해빙으로 우리가 경험할 수도 있는 충격과 혼란, 종말과 비극을 영화적으로 너무나 잘 표현했다. 그리고 얼마 후, 혼돈과 파멸의 시간이 지나 춥고 어두운 지하층에 새롭게 자리 잡은 기탁(송강호 분)이 더 이상 지상을 꿈꾸지 않자 세상이 평온해진 것처럼, 어떤 종이 멸망한 후 지구는 새로운 종을 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런 면에서 ‘기생충’의 후각적 미장센이라 할 수 있는 ‘냄새’의 문제는 너무나 문제적이다. 박 사장(이선균 분)은 자신의 집에 들어 온 사람들에게서(기탁의 가족) 이상한 냄새를 맡는다. 처음엔 이유를 몰랐지만, 결국 축제의 장에서 냄새의 정체를 알게 되고 그 순간 그는 죽게 된다.

봉준호의 영화들은 확실히 ‘2차 인지혁명’에 가깝다. 하라리가 말한 인지혁명은 인간중심 혁명이었다. 아프리카를 벗어나 전 지구로 약진하는 계기가 됐다. 그렇다면 ‘2차 인지혁명’은 이와는 확연히 달라야 한다. 탈인간, 탈지구라는 문제의식을 담아야 하는데, 봉준호는 일관되게 이를 실천했다. 그리고 그 정곡이 바로 ‘기생충’이다. 이런 점에서 2020년의 아카데미가 봉준호에 주목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이제 남은 것은 그의 메시지를 어떻게 사회화하고 내면화할 것인가이다. 현재 우리는 지구 온난화 극복을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 태양에너지나 수소에너지 등이 제시되지만 기술적, 경제적 측면에서 갈 길이 멀다. 하지만 포기하기는 이르다. 희망을 잃지 말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 1차 인지혁명과는 다른 새로운 사고와 소통 방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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