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문재인 케어와 윤석열 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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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우 라이프부 차장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9일 퇴임 연설에서 지난 임기를 술회하면서 K-방역과 ‘문재인 케어’에 대해 큰 자부심을 나타났다. 이 양대 축을 기반으로 우리나라가 보건의료 분야에서 세계적인 선도국가가 됐다는 것이다.

보건의료분야 정책 비전으로‘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를 기치로 내건 문 전 대통령은 ‘오바마 케어’를 본뜬 ‘문재인 케어’를 앞세워 △비급여의 급여화 △취약계층 의료비 경감 △의료안전망 강화 등 3개 축을 통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공을 들였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가족이 중병에 걸렸을 경우에 큰 부담이 됐던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 등 3대 비급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선택진료비를 폐지하고, 병원급 이상의 2·3인실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의료비 부담을 경감시켰다. 그 결과 상급종합병원에서의 건강보험 보장률이 2017년 65.1%에서 2019년 69.5%로 상승했고, 2018년부터 3년간 3700만 명의 국민이 9조 2000억 원의 의료비 경감 혜택을 받는 등 의료안전망이 한층 두터워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내건 문재인 케어
안전망 두텁게 했지만 국민 부담은 가중
민간병원 지원 육성 앞세운 윤석열 정부
재정 건전성·의료 기반 ‘두 토끼’ 잡을까

하지만 이 같은 보장성 강화는 만성적자에 허덕이는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한층 악화시켰고, 이를 벌충하기 위한 국민들의 건강보험료 인상 부담으로 귀결됐다. 건강보험률은 최근 10년간 해마다 인상됐다. 박근혜 정부 당시 1%대 안팎에 이르던 연간 건강보험료 인상률은 문 정부 들어 1.89%에서 최대 3.49%까지 인상 폭을 두 배 가까이 키웠다. 이 같은 급격한 보험료 인상은 가뜩이나 코로나19로 한계 상황에 몰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을 한층 쪼들리게 만들었다. 비급여 통제에 따른 풍선효과로 동네의원 이용 비중이 줄고, 대형병원 쏠림이 가속화됐으며, 불필요한 ‘의료 쇼핑’을 부추기면서 전체 의료비 증가와 함께 민간보험 수익성도 악화되면서 실손보험료 인상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공공의료 확대를 위해 의사정원을 늘리고 공공의대 신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반대하는 의사들을 기득권 집단으로 몰아세우면서 국가 보건의료정책의 핵심 파트너인 의료계의 자부심에 씻을 수 없는 생채기를 남기기도 했다.

상식과 공정, 국익과 실용을 국정운영의 기치로,‘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윤석열 정부가 이달 출범하면서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일대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110대 국정과제에 담긴‘윤석열 케어’의 핵심은 △예방적 건강관리 강화 △바이오·디지털헬스 글로벌 중심국가 도약 △필수의료 기반 강화 및 의료비 부담 완화 △감염병 대응체계 고도화 등으로 집약된다. 윤 정부는 필수 공공의료 인력과 인프라를 강화해 언제 어디서든 모든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지역완결형 의료체제를 구축한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감염병, 응급, 중증 외상, 분만 등 필수 의료나 중증 희소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도입 등 고액의료비 부담 완화에 무게를 두고 보장성 강화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가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에 직접 나서기보다 공공정책수가제를 도입해 민간병원이 공공의료 역할을 하도록 측면 지원하겠다는 것이 이전 정부와 차별화되는 두드러진 차이점이다. 이와 함께 지역간 의료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역 국립대병원과 상급종합병원의 공공성을 강화해‘의료의 수도권 쏠림’을 막겠다는 정책도 눈에 띈다. 전반적으로 국민 세금 부담과 직결되는 정부의 직접 재정 투입을 지양하고, 민간병원 지원을 확대해 공공의료 인프라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윤석열 케어’가 구상대로 성공한다면 과도한 보건의료 재정 지출을 막고, 민간 의료분야 경쟁력을 강화해 4차산업혁명에 부합하는 미래형 의료산업 육성에도 일대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계층별 양극화와 고령화, 저출산 등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되는 필수 공공재인 의료 영역에서조차 국가 책임을 방기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도 나온다. ‘증세 없는 복지’만큼이나 ‘민간병원 육성을 통한 필수의료 기반 강화’가 ‘듣기 좋은 허구’가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가장 관심을 끈 의료분야 정책이 탈모 치료의 건강보험 적용 확대일 만큼, 건강보험 보장 확대와 의료비 경감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치는 높다. 다시 말해 이 문제가 삐걱될 경우 그만큼 국민적 휘발성도 크다는 것이다. 전 정권의 부동산이 그랬 듯 의료가 윤 정부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이 되지 않으려면 두텁고도 촘촘한 의료지원체계 구축이라는 원칙 아래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책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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