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소한 것이 전부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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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홍 부산복지개발원 지역통합연구부 책임연구위원

얼마 전 한 젊은이가 병든 아버지를 죽도록 방치해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사정을 알고 보니 치료비를 대느라 빚을 진 청년이 더 이상 돈을 구하지 못하자 아버지를 방치한 끝에 사망케 한 사건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전 국민 의료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있고 장애인 복지제도도 적지 않은데, 왜 이런 사건들이 일어난 것일까?

우리나라는 저출산고령사회에 접어든 지 오래이고, 1인 가구가 주류 가구 유형으로 자리 잡은 지도 오래다. 산업화로 가족과 이웃공동체가 붕괴한 지 오래지만 우리나라 복지체계는 최근까지도 부양의무제를 유지하는 등 이에 의존하는 비중이 크다. 그러나 치매와 정신질환, 각종 장애로 인한 부양과 돌봄의 부담은 개인이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 여기에 ‘시간’과 ‘경제력’이라는 변수가 추가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가족 구성원의 수가 적거나 가족의 경제력이 낮을 경우 그 부담은 더욱 커진다. 이런 경우 돌봄 대상자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돌봄 제공자의 문제로까지 확대된다. 10년 이상을 투병하다 돌아간 지인의 부친은 본인의 건강 상태가 아니라 간병하던 모친의 건강이 나빠져 입원 생활을 조기에 시작하실 수밖에 없었다. 많은 돌봄 제공자들이 비싼 혹은 지속적인 치료비 지출과, 아픈 가족을 돌보느라 생산활동에 참여하지 못해 이중삼중의 경제적 부담을 느낀다. 또한 간병 기간 학생은 학습권을 누리지 못하고, 취업준비생은 취업 준비를 중단하며, 성인 가족은 직장을 그만두는 등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겪는 고립감, 무기력함, 불안, 우울증 등 심리적 고통도 적지 않다. 어린 시절에 떠맡게 된 돌봄 부담은 현재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생애 전반에도 다양하게 영향을 미친다.

우리 복지 시스템이 놓친 것은 돌봄 대상자에게만 집중한 나머지 돌봄 제공자가 처한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데 있는 것은 아닐까?

기존 제도는 돌봄 대상자와 그들의 건강 상태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들을 둘러싼 다양한 상황과 맥락들을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하며 무시해왔다. 그러나 필자는 많은 취약계층이 병원비가 아니라 병원까지 가는 데 드는 교통비를 마련하지 못해 병원 가기를 포기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적이 있다.

돌봄 서비스가 이러한 인간 삶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상황과 맥락의 중요성을 간과한다면 돌봄 대상자의 ‘안녕한 삶’이라는 성과는 거둘 수 없을 것이다. 가족인 돌봄 제공자의 고통은 돌봄 대상자로 하여금 삶을 이어 나가고자 하는 의지를 꺾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적이든, 심리적이든 남의 눈에 사소해 보이는 보잘것없는 것들이 취약한 사람들에게는 ‘전부’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우리 복지 시스템도 사소한 것들을 챙기고 돌봄 대상자의 안녕을 위해 돌봄 제공자의 상황을 돌아보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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