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잡은 물고기에 먹이를 주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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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헌 해양수산부장

얼마전 만난 해양 관련 공공기관장의 하소연 하나. 부산으로 본사를 이전한 이후 직원 구성면에서 갈수록 다양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본사가 서울일 때는 여러 대학 출신들이 입사를 했지만, 부산 본사 이후는 일부 지방국립대 출신들의 비율이 높아졌다는 것. 물론 이 기관장은 ‘다양성 부족’이라는 말로 에둘러 표현했지만, ‘인재 부족’이라는 말로 받아들여졌다.

또 다른 부산 이전 공공기관장은 ‘뭐하러 여기에 왔는지 모르겠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정부에서 내려가라고 해서 내려는 왔는데, 부산시는 전혀 관심이 없고, 휑한 곳에서 근무하면서 주말 부부를 해야 하는 직원들의 고충만 커져간다는 것.

공공기관 이전만 하곤 그 뒤엔 무관심
역대 대통령·시장, 표 의식 철학 부재
해양·금융 특구 시너지 낼 정책 절실

6·1 지방선거가 끝났다. 지방 권력도 대거 물갈이 됐고, 지난달에는 새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면서 정책의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하지만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주제만을 놓고 보건대, 별로 큰 기대가 들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나 인수위의 정책 우선 순위에 지방 소멸에 대한 해결 의지나 고민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한창 말이 나오는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 등 몇 개의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면 마치 지역균형발전의 소임을 다한 것 아니냐는 자세로 읽힌다.

지난해 재보선으로 선출된 박형준 부산시장의 1년간 부산시정을 보건대도 지방 소멸을 막을 해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역대 부산시장을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물론 지역균형발전을 단기간에, 인위적으로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리더라면 최소한의 철학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고민한 흔적이라도 있어야 한다.

지난달 31일 바다의 날 기념식에서 윤 대통령의 기념사는 너무나도 뻔한 말들의 향연이었다. ‘해양수도인 부산을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핵심 거점으로 삼겠다’ ‘부산항이 세계적인 초대형 메가포트로 도약할 수 있도록 관련 인프라를 확충하겠다’ ‘저 넓고 푸른 바다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 ‘디지털 물류로의 전환은 4차산업혁명 시대에 필수이기 때문에 친환경 자율운항 선박, 스마트 자동화 항만 등 항만 관련 인프라를 시대적 흐름에 맞춰 고도화해야 한다’ 등.

이쪽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귀에 못이 박이도록 많이 듣던 말이다. 마치 종합선물세트와도 같았다. 어릴적 먹었던 종합선물세트 과자는 뭔가 푸짐해 보여도 막상 먹으려고 하면 먹을 게 없었던, 그 종합선물세트.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이 이뤄진 지 어언 10년이 지났다. 부산은 영도구 동삼동에 ‘해양 특구’(해양 중심지), 남구 문현동에 ‘금융 특구’(금융 중심지)를 두고 각각 해양수산 관련 공공기관, 금융 관련 공공기관이 밀집한 클러스터를 이뤘다.

민간기업을 정부가 마음대로 옮기지 못하니, 공공기관이라도 옮겨서 관련 산업을 각 지방에 특화해 발전시키는 게 지역균형발전의 취지다. 수도권 비대화를 막고 지방 소멸을 해결하기 위함이다. 공공기관이 옮겨 클러스터를 이루면 관련 산업이 조금이라도 발전하고, 결국 민간기업도 따라 옮기면서 관련 산업이 더 발전하는 선순환이 목적이다.

그런데, 10년의 중간 평가를 해보자면 암울하다. 시작만 거창했다. 정부는 공공기관만 이전하면 지역발전이 다 이뤄진 것처럼, 부산시는 공공기관만 부산으로 본사를 옮기면 소원을 이룬 것처럼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부산시와 공공기관의 소통은 별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 흔한 정기적인 회의조차 없다. 각자도생이다. 클러스터의 시너지 효과가 전혀 없다. 단지 공간적으로만 한데 모여있는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하향평준화가 우려된다. 부산으로 이전한 민간기업은 전무하다. 관련 산업이 발전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여러 공공기관을 모아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 게 부산시의 임무다. ‘잡은 물고기에 먹이를 주지 않으면’, 당연히 물고기는 죽는다. 어렵게 잡은 물고기에 먹이를 주고 어항에 물을 갈아주고 애지중지 해야 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부산의 강점이라고 판단해 힘들게 유치한 해양과 금융 공공기관이다. 해양수산과 금융 산업은 부산의 최대 먹거리다. 이들 산업이 더 꽃을 피우지도 못한 채 또 다른 신산업 발굴에만 몰두하는 것은 ‘선택과 집중’에도 벗어난다.

표를 의식해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것이 정치인인 대통령과 부산시장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백번 양보한다. 하지만 이젠 선거도 끝났다. 지역의 발전을 위해 무엇이 중요한지 차분히 고민하길 바란다. corni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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