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 필드’ 미국, 이번에도 애도만 있고 행동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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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미국 워싱턴DC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총기 안전 관련법 개정 촉구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다음은 나?(Am I next?)”라고 쓰인 조준 팻말을 들고 의원들의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또, 애도만 있고 행동은 없다.”

미국 대도시 시장들이 계속되는 총기 사건에도 정부와 의회가 규제를 강화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 분노와 무력감을 표출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최근 잇따르는 총기참사에 총기규제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공화당의 반대로 법 통과는 난망한 상황이다.

지난 3∼6일 네바다주 리노시에서 열린 제90차 미국시장협의회(USCM)에 참석한 시장 170여 명 중 대다수가 총기 규제 강화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 전망을 내놨다고 NYT가 보도했다. 일부는 정치권이 어떤 식으로든 규제에 합의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대다수는 총격에 대한 분노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을 그동안 너무 자주 봐왔다고 한탄했다.

NYT, 총기규제법 통과 난망 보도
미국시장협 참석 시장 170여 명
대부분 규제 가능성 부정적 전망
상원 공화당 제동 걸면 속수무책
지난 주말 사이도 총기난사 13건
올해 들어서만 246건이나 발생

경찰서장 출신인 제인 카스토르 플로리다주 템파시장은 “우리는 여전히 총기 난사 이후 그냥 기도만 하고 애도를 표하며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을 것인가. 불행하게도 그럴 것 같다”고 낙담했다. 짐 케니 필라델피아시장은 행사 중이던 4일 보좌관으로부터 시내에서 총격이 발생해 10여 명이 다치고 3명이 숨졌다고 보고 받았다. 그는 “슬프고 두려운 시민들에게 할 말이 없다”면서 “기도와 애도는 소용이 없다. 더는 통하지 않는다. 총기 사건을 막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좌절한다”고 말했다. NYT에 따르면 현재 미국 대도시 대부분의 시장은 민주당 소속으로, 이들 다수는 오래 전부터 광범위한 총기 규제를 촉구해왔다.

그러나 시장들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촉구한 공격형 총기 금지가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며, 신원 조회 확대나 총기 구매 가능 연령 상향 등 상대적으로 점진적인 조치마저 도입이 쉽지 않을 것으로 봤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2일 생중계 연설에서 “미국의 너무나 많은 일상적인 곳들이 킬링 필드(대학살 현장)로 변하고 있다”고까지 하며 읍소했지만, 이번에도 불발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양원제 의회를 가진 미국에서 하원은 총기규제 강화에 찬성하는 민주당이 과반 다수당이지만, 상원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50석씩 갖고 있다. 상원의 공화당이 제동을 걸고 나서면 어떤 입법도 쉽지 않다. “총을 든 악당에 맞서기 위해서는 선한 사람의 총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필두로, 공화당 정치인들은 헌법이 보장한 권리인 ‘총기를 보유할 권리’를 사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필리버스터까지 고려하면, 규제법이 상원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최소 10명의 공화당 의원이 필요하다.

미국의 중립적 비영리 연구단체 ‘오픈시크릿’ 자료에 따르면 전미총기협회를 비롯한 총기 옹호단체들이 1998년 이후 로비에 쓴 비용은 1억 9000만 달러(약 2400억 원)에 달한다. 또 총기 옹호단체들이 1989년 이후 올해까지 연방 공직후보자와 정당에 기부한 돈은 5050만 달러(약 630억 원)로 99%가 공화당으로 갔다.

한편, 지난 주말 사이에만 미국에서는 13건의 총기난사가 발생해 최소 12명이 숨지고, 70여 명이 다쳤다. 비영리단체 총기폭력아카이브는 미국에서 올해 6월 5일까지 246건의 총기난사(총격범을 제외하고 최소 4명이 피격된 사건)를 집계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슷하지만 2020년 161건, 2019년 154건보다 크게 늘어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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