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교육감의 옆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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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진 사회부 행정팀 차장

4조 8753억 원. 1년 동안 돼지국밥 5억 그릇을 사먹고도 남을 예산을 운용하는 기관이 있다. 부산지역 유치원과 초·중·고·특수학교 1000여 곳을 총괄하는 곳. 부산시교육청이다. 최근 지방선거에서 8년 만에 시교육청 수장이 바뀌었다. 3선에 도전한 김석준 현 교육감에 맞선 하윤수 전 부산교대 총장이 ‘1.65%포인트’ 박빙 승부 끝에 당선증을 거머쥐었다.

교육감 선거는 정당 공천이 아니다. 부산시장 선거처럼 16개 구·군, 291만 명 유권자를 대상으로 선거를 치르지만 조직과 자금 등 정당 도움을 받을 수 없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위한 보호 장치이지만 역으로 선거꾼들이 개입할 가능성도 높다. 또 하나, 교육감 선거는 ‘교호순번제’로 치러진다. 후보가 몇 명이건, 똑같은 빈도로 번갈아가며 투표용지 이름과 선거벽보 순서를 바꾼다. 좋은 순번을 뽑아 당선되는 ‘로또 교육감’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교육감 선거에만 도입된 특수 장치는 그만큼 교육 수장이 정치적 성향이나 뽑기 운에 의해 좌우돼선 안 되는 중요한 자리란 방증이다. 하지만 이 같은 중요성을 알고 표를 던진 유권자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실제로 선거 기간 기자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교육 관련 정책도 공약도 아닌 “누가 당선될 것 같으냐”였다. 진보-보수 후보 간 첫 양자대결인 만큼 “선거가 재밌을 것 같다”는 반응이 주였다. 우리 주머니에서 나온 소중한 세금, 부산시의 3분의 1이 넘는 예산을 집행하는 교육감은 ‘재미’로 바라봐선 안 되는 자리임에 분명하다.

선출직은 자리의 무게만큼 곁자리도 신경을 써야 한다. 하 당선인의 주변은 어떨까. 오래 전 정계나 교육계를 은퇴한 인물이 선거캠프 주요 직책에 포진해 ‘올드 보이(Old Boy)의 귀환’이라 불릴 만했다. 선거 운동 마지막 날 풍경도 예사롭지 않았다. 부산진구 서면 거리에서 진행된 막판 유세현장은 붉은 물결로 뒤덮였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면 동성애가 창궐한다”는 지지발언에 군중들은 “하윤수”를 연호했다. 2일 새벽 당선이 확정된 뒤 캠프 인사들이 당선인 옆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그의 배우자가 간신히 곁에 자리하는 해프닝도 있었고, 최근엔 한 현직 기자가 ‘시교육청 대변인에 내정됐다’며 문자메시지를 돌려 논란이 일고 있다.

정치적 편향과 자리싸움을 의식한 듯 하 당선인은 “캠프 인사를 가급적 배제하고, 보수와 진보를 떠나 교육전문가로 인수위를 꾸리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선거 기간 적대시했던 전교조가 교육감직 인수위원회에 합류했지만, 교육과 무관하게 인수위원 명단에 오른 캠프 출신 인사도 인수위 현판식에서 당선인 옆자리를 지켰다. 이 모든 상황을 둘러싼 안팎의 우려를 당선인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지난 8일 인수위 출범 기자회견에서 “무너진 교육의 본령을 회복하겠다”고 밝힌 당선인은 “기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언론이 본령을 다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당선인의 말씀대로, 비판과 감시라는 언론의 본령에 더욱 충실하고자 한다. 교육감의 옆자리를 예의주시하고, 5억 그릇의 국밥이 법과 원칙에 따라 골고루 나눠지는지 면밀히 살필 것이다. 당선인이 강조한 ‘공정한 교육’을 위해 언론인으로서 적극 돕겠다. 하윤수 부산시교육감의 당선을 축하드린다. djr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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