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다시 일당 독점 시대 맞은 부산에 대한 우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김영한 사회부 행정팀장

“별 수 있나요. 내년 지방선거 때까지 참아야죠.” 6·1지방선거 결과를 보면서 지난해 연말 박형준 부산시장의 한 측근이 답답함을 호소한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는 부산시의 2022년도 예산안을 놓고 부산시의회와 부산시가 팽팽하게 대립하던 때였다. 보수 성향인 그는 지방선거로 보수 정당이 부산시의회 권력을 되찾을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고, 6개월여가 흐른 지금 그의 예상은 현실이 됐다.

지방선거로 보수 독점 회귀
1년 남짓 보수·진보 분점 끝나
‘견제와 균형’ 작동 불능 위기
대안 세력 향한 기대는 남겨야

아무튼 당시 부산시의회를 장악한 더불어민주당 시의원들은 ‘민생 예산 확대’ ‘절차상 문제’ 등을 이유로 공격적인 예산 칼질에 나섰고 국민의힘 소속 박형준 시장이 이끄는 부산시는 시장 공약 사업 예산만 골라 잘라내는 ‘정치적 심사’라고 불만을 터트렸다. 이후 부산시가 시의회가 의결한 예산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부동의’ 카드를 꺼내들자 시의회는 박 시장 공약 사업 예산 일부를 살려내는 쪽으로 한발 물러서며 타협점을 찾았다. 시각에 따라 정치적 이해가 충돌한 대립으로 볼 수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견제와 균형이 작동한 사례로 이해할 수도 있는 모습이었다.

이렇듯 지난 1년 2개월은 부산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권력 분점을 경험한 시기였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각각 부산의 양대 기관인 부산시와 부산시의회를 나눠 책임지는 구도였다. 부산이 민주주의 핵심 원리인 견제와 균형을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기였지만 안타깝게도 그 기간은 짧았다.

그런 측면에서 부산은 ‘보수의 승리, 진보의 패배’라는 이번 지방선거 결과 너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부산 정치가 다시 일당 독점 시대로 회귀한 사실 말이다. 지방자치 부활 이후 부산에서는 지방권력 독점이 내내 이어졌다. 동시에 지방자치 역량을 쌓을 기회를 놓쳤다. 지역에서 자치권을 달라고 아무리 요구해도 중앙은 ‘니들에게 그런 능력이 있느냐’고 코웃음치는 일도 반복됐다.

물론 권력 분점이 부산 발전과 시민 행복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독점 권력이 실패할 것이라고 단정할 이유도 없다. 현실 정치에서는 이상적인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지 않는 일이 수시로 벌어지는 게 사실이다.

부산 현안들을 살펴보면 권력 분점의 이익이 더 크다고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빠른 결단과 정확한 실행이 요구되는 현안이 대부분이어서서 특정 세력이 책임지고 일사불란하게 대응하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실제 부산시는 가덕신공항 사업 전체를 컨트롤하게 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으며,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도 그동안 부산시가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럼에도 견제와 균형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는 점에서 부산 정치는 다시 위기임에는 틀림없다. 권력은 한 쪽으로 몰리면 남용 가능성도 커지는 게 기본 속성이다. 실제 부산은 수십 년 일당 독점이 쇠퇴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한 도시다.

부산의 견제·대안 세력이 점점 영향력을 잃는 상황도 우려스럽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유일한 제3지대 부산시장 후보였던 정의당 김영진 후보의 득표율은 1.39%에 그쳤다. 정당 지지율을 간접 확인할 수 있는 광역의원비례대표 투표에서도 거대 양당을 제외한 정의당, 기본소득당, 진보당, 한류연합당 등 제3지대 정당 득표율은 다 더해도 3.5%였다. 이들의 주장, 의견이 지역 정치에 반영될 길이 막힌 형국이다.

시민사회도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는 있지만 시민들의 주목도는 과거 같지 않은 게 현실이다. 부산 정치에서 견제와 균형을 기대한다면 권력을 독점한 보수 진영이 스스로 경계하고 시민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것뿐이라는 자조마저 나온다.

결국 부산이 기댈 언덕은 시민뿐이다. 근래 선거에서 시민들의 심판의 칼날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다. 부산의 거대 양당은 대략 30~40% 사이의 지지층을 두고 있는 걸로 보인다. 중도 성향 시민 비율 역시 적지 않다. 권력을 쥔 세력이 오만하게 굴 경우에 가차 없이 심판하는 시민도 더 늘었다는 의미다. 부산 권력을 잠시 ‘맡은’ 세력들 역시 시민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민주당을 비롯한 견제·대안 세력을 아예 내치지는 말아 달라고 시민들께 당부하고 싶다. ‘민주당에 기회를 줬는데 스스로 걷어찬 것 아니냐’는 지적에 공감한다. 하지만 그들은 독점 권력이 잘못된 길로 나아갈 경우 최일선에서 저지할 세력이기도 하다. 선출직 경험을 쌓은 견제·대안 세력 정치인들도 다시 실력을 길러 도전장을 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kim01@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