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영원’을 위해 ‘유한’을 선택한 생물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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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의 생명사 / 이나가키 히데히로

‘죽음’은 인간에게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장벽으로 다가온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와 철학에서 가장 무겁게 다룬 주제이다. 필멸의 운명이기에 하데스 세계로 내려가는 순간은 공포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영생의 존재인 신이 탄생한 것도 그러한 한계를 이겨내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한 생물학자는 여기에 의문을 던진다. ‘죽음’을 단절이 아니라 영원으로 가는 위대한 발명으로 보는 시각이다. <패자의 생명사>는 그러한 통찰을 풀어낸다. 저자는 “생명은 영원히 계속되기 위해서 자기를 파괴하고 새롭게 다시 만드는 것을 생각해냈다”고 설명한다. ‘영원’을 위해 ‘유한’을 선택했다는 역설이다.

그는 이처럼 38억 년에 걸친 생명 역사의 이면을 살핀다. 특히 살아남은 생물이 생존 경쟁에서 밀려난 패자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최초의 생명에서 인류 출현에 이르는 역동적인 장면을 패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려는 자세이다.

저자가 설명하는 패자들의 생존 전략은 실로 놀랍다. 대표적인 게 박테리아이다. 이 생명체는 소박하고 단순한 형태로 더 크고 복잡해진 생물의 진화에 저항했다. 인간의 조상 포유류도 마찬가지다. 최대의 강적 공룡을 피해 다니며 청각과 후각을 발달시켰다. 알을 지킬 힘이 부족했기에 태생이라는 또 하나의 무기를 습득해 진화의 위대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

호모 사피엔스 역시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커뮤니케이션을 도모했다. 지금까지는 최후의 승자로 남아 있는 비결이다. <패자의 생명사>는 그렇게 약자와 사멸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박유미 옮김/더숲/248쪽/1만 6000원. 이준영 선임기자 g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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