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식의 인문예술 풀꽃향기] 그리운 나무 그늘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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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고신대 총장

파트리치아 야네치코바는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공동 TV 오디션 프로그램 ‘탤런트마니아’에서 열두 살에 우승하고 열여섯 살 때 이탈리아 로마의 뮤지카 사크라 국제콩쿠르에서 정상을 차지하면서 세계적 신성으로 떠오른 소프라노이다. 클래식 크로스오버로 모든 장르를 다 잘 부르는데, 청아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는 감상자들을 아늑한 꿈길 속으로 이끈다. 약관 20대 초반의 그녀가 금년 초 갑자기 발견된 유방암으로 공연을 중단하고 투병 중이어서 팬들은 진한 아쉬움과 큰 슬픔에 잠겨 있다. 야네치코바가 부른 주옥같은 노래 가운데 봄철에 좋은 곡으로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 ‘봄의 소리’가 있고, 여름날에 듣고 싶은 노래로는 헨델의 라르고 ‘크세르크세스’에 나오는 아리아 ‘그리운 나무 그늘(Ombra mai fu)’이 있다. 이 아리아에서 바벨론제국의 크세르크세스 왕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따가운 햇빛을 막아 주는 플라타너스 나무에 대해 ‘이런 사랑스러운 나무 그늘을 본 적이 없다’고 노래한다.

누구에게나 추억이 서린 안식의 공간
동서고금 뭇 예술가들에겐 영감의 둥지
인생에도 마음이 기댈 나무 그늘 필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살면서 이런 나무 그늘을 만난 경우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어려서는 첩첩산중 고향 집 앞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 있어서 무더운 여름날 그 그늘을 종종 찾았다. 독일 유학 때에는 주말마다 기숙사 뒤편 언덕으로 산책을 가곤 했는데, 언덕 위 홀로 서 있던 나무 아래 고색창연한 벤치에 앉아 옛 도시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도나우강을 바라보곤 했었다. 그리고 수년 전 한여름 러시아 여행 중 모스크바에서 기차로 서너 시간 거리에 있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도 작은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의 아름드리 고목 아래에서 여대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을 인상 깊게 본 적이 있다. 작금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태도를 보고 그때의 너무나 평화스러운 모습이 뇌리에 오버랩되면서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추억의 장소로 기억될 법한 나무 그늘은 햇빛을 피해 잠시 머무는 쉼의 장소이다. 그러고 보니 휴식, 휴가, 휴일, 휴양 등에 사용되는 한자어 ‘휴(休)’는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어 있는 형상어이다. 이렇게 나무 아래 앉아 쉬노라면 육체의 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쉼도 따르기에 다른 한자어 ‘쉴 휴( )’는 바로 그런 상태를 묘사한다. 특히 무더운 여름날 농부들은 일하다가 나무 그늘에서 땀을 식히거나 잠깐 오수를 취하고, 선비들은 나무 기둥에 기대앉아 독서하고 문학적 한담을 주고받곤 했다. 어디 그뿐인가? 마을 중앙 느티나무 그늘은 동네 할머니들의 사랑방이요, 동구 밖 외딴 나무 아래는 청춘들이 남의 눈길을 피해 몰래 만나는 비밀연애 장소였다. 그리고 나무 아래는 문인과 화가들에게 창작 공간이 되곤 했다. 세잔은 번잡한 파리를 떠나 한적한 남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 살면서 생 빅투아르가 보이는 나무 그늘에 앉아 그 산을 그렸다. 헤르만 헤세는 스위스 남부 몬타뇰라 언덕의 나무에 기대 고색창연한 작은 마을 테신을 바라보며 스케치 작업을 하고 햇살 반짝이는 루가노 호수를 내려다보며 글을 썼다.

동양 문학사나 회화사에도 나무 아래는 빈번하게 등장한다. 관직을 던지고 소박한 전원생활을 시작한 도연명은 집 마당에 있는 소나무와 자기가 심은 다섯 버드나무인 오류나무 아래에서 남산을 바라보고 ‘귀거래사’를 썼다. 이에 한국과 중국 회화사에 20수 ‘귀거래사’ 중 대표적인 제5수를 따라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다’라는 뜻의 ‘동리채국도’나 ‘앉아서 남산을 바라본다’라는 의미의 ‘좌간남산도’가 적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나무 아래의 시원한 그늘은 육체와 마음에 쉼을 주면서 학자나 예인들을 새로운 창작의 세계로 이끌었다. 한 장소에서 같은 모습의 생 빅투아르 산을 다양하게 포착하여 그린 세잔의 작품이 수십 점에 이르는데, 모두 안정감과 깊이가 있다. 자연에 대한 관조에서 나온 헤세의 글과 그림들도 한결같이 세속에 때 묻지 않은 순수와 따스함을 풍긴다. 도연명의 경우도 ‘귀거래사’ 같은 수에 등장한 ‘동쪽 울타리’ ‘국화’ ‘산 기운’ ‘저무는 해’ ‘나는 새’ 그리고 ‘한가로운 마음’ 같은 정감 어린 낱말들에 이미 전원생활의 유유자적과 깊은 서정성이 묻어난다.

구약성경의 전도서는 사람은 다 해 아래 산다고 가르친다. 그러다 보니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나그네의 삶이 피곤하고 지칠 수밖에 없다. 이런 인생에 필요한 것은 더위를 막아 주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나무 그늘이다. 여름이 가기 전에 굳이 크세르크세스 왕의 플라타너스나 우리 선조들의 느티나무 아래가 아니더라도 나무 그늘에 앉아보면 진정한 쉼과 새로운 출발이 될 것이다. 야네치코바도 소싯적 나무 아래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른 것이 성악의 출발이었다고 한다. 이왕이면 헨델의 아리아 ‘그리운 나무 그늘’을 감상하거나 불러 본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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