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것들] “젊은 정치인들, 벌써 기죽었나? 더 치열하게 나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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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주니어보드 '요즘것들' 정치부 이승훈 기자

<부산일보>가 올 2월 대선을 앞두고 부산 금정구 한 스튜디오에서 예비 청년 정치인들과 진행한 ‘가짜 지지자 찾기’ 게임. 부산일보DB

동병상련일까. MZ세대 기자(34)가 6·1 지방선거를 취재하며 만났던 ‘요즘것들’ 몇몇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젊은 정치인, 이른바 ‘젊치인’들이다.

선거판서 만난 청년 정치인들
기성세대와 다른 패기에 매력
줄서기 공천 현실에 들러리
선거 끝난 뒤엔 ‘조용한 청년’
정체된 부산 움직이게 하려면
젊치인 ‘무모한 열정’ 필요해

비슷한 처지인 젊치인들을 만나면 외벌이, 육아, 영끌 등을 놓고 한창 떠들어댔다. 오히려 공천 가능성이나 정치 현안은 뒷전일 정도였다. 2030세대 현실을 같이 느끼는 예비 정치인이 있다는 것이 반가웠고 그들의 활약이 내심 기대됐다. “오늘은 지역구 내 전통시장을 세 바퀴나 돌았고, 주민 반응도 완전히 달라졌다”며 ‘김칫국’을 마셔 대는 패기도 밉지 않았다.

하지만 희망은 딱 거기까지였다. 공천 정국이 끝나면서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이들은 ‘조용한 청년’으로 돌아갔다. 대부분 경선도 치르지 못하고 공천 심사에서 탈락한 것이다. “공관위 면접을 잘 봤다” “PPAT(공직후보자 기초자격시험) 90점을 넘겼다”는 말들이 무색해졌다. 살아남은 몇몇도 결국은 시의원에서 구의원으로 급을 낮춘 게 결정적이었다. 올해 부산에서 2030세대 시·구의원 후보 수는 4년 전보다 14명 줄었다. 대선을 즈음해 지난해부터 젊치인들이 받아 온 관심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결과다.

한 공관위원의 말이 많은 걸 설명했다. “문제 있는 청년도 많았는데, 누가 봐도 똑똑한 친구도 꽤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역 국회의원들이 자기 사람 심으려 회의장 찾아오고 밤늦게까지 전화하는데, 뭐 어떻게 할 도리가 없더라고요. 시·구의원은 원내외 위원장 입김이 핵심이라는 거 알지 않습니까.” 한 당협위원장의 말도 기억에 남는다. “젊은 사람들이 너무 나대더라.” 패기와 열정으로 봤던 예비 젊치인의 태도는 이렇게 평가절하됐다. 위원장 허락도 없이 ‘솔플’(솔로 플레이·게임을 혼자서 하는 것)한 것을 두고 “철이 없다” “정치력이 부족하다”며 혀를 찼다. 벽이 높았다.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만난 예비 젊치인의 모습은 180도 변해 있었다. 한 달 전 카페에 앉아 떠들던 모습은 없고 한 마디 한 마디 신중했다. “할 말은 많지만…. 뭐, 제가 부족했지요.” 이들은 누군가의 눈치를 보듯 경선도 못 하고 떨어진 것에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이들은 철이 든 것일까?

냉정하게 보면 젊치인에 대한 기성세대의 평가는 크게 틀리지는 않는다. 정치력,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은 ‘팩트’일 것이다. 젊다는 이유로 거센 ‘청년 열풍’에 떠밀리듯이 나온 이들도 있었다. 현안에 대한 대책 등이 기성 정치권의 ‘짬바’(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노련함)에 맞서긴 역부족이었다. 이런 조건에서 정치 전면에 나선다고 하니 기성세대 눈에는 나대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젊치인들만 탓하긴 무리가 있다. 경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이들이 과연 실력과 정치력을 키울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 기껏해야 당에서 진행하는 단발성 교육·강의를 듣거나 정치 전공으로 대학원에 가는 정도 아닌가. 그게 아니면 현실에 굴복해 기성 유력 정치인의 눈에 띄지 않는 도우미가 되는 수밖에 없다. 설령 실력이 있더라도 ‘줄서기’에 공천이 결정되는 현실의 벽은 더욱 견고하다. 결국 ‘자기 정치’로 자리를 잡는 것보다 불확실하더라도 선배들에게서 자리를 물려받는 게 쉬울 수 있다.

지역 젊치인의 패기와 열정은 부산의 활력이다. 이들의 참신하고 때로는 무모한 아이디어가 정체된 부산을 움직이게 하고 2030의 현실을 바꾼다. 기성 정치권이 말하는 ‘나대는 청년’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노르웨이, 스웨덴 사회민주당은 빠르면 10살 때부터 정치에 대해 훈련하며 경험을 쌓게 한다고 한다. 젊치인이 홀로서기할 수 있도록 내실 있는 정치 훈련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공관위의 실질적 독립도 시급하다. 나대는 것은 흠이 아니다. 우리 같이, 더 치열하게 나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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