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보는 것은 비극의 궤적을 들여다보는 것”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발 없는 새 / 정찬

일본군에 의해 노동자들이 맨발로 끌려가 학살 당한 것을 추모하기 위해 중국 난징시의 난징대학살 희생자기념홀 한쪽에 신발 6830켤레를 놓았던 2010년 추모 행사의 한 장면. 부산일보DB 일본군에 의해 노동자들이 맨발로 끌려가 학살 당한 것을 추모하기 위해 중국 난징시의 난징대학살 희생자기념홀 한쪽에 신발 6830켤레를 놓았던 2010년 추모 행사의 한 장면. 부산일보DB

동아시아에는 역사의 비극이 많다. 소설가 정찬의 열 번째 장편소설 〈발 없는 새〉는 그중 1937~1938년 난징 대학살을 끄집어낸다. 일본군에 의해 무려 20만 명이 학살당했고, 강간당한 여성이 2만~8만 명으로 추정된다.

1937~1938년 난징 대학살 배경 소설

비극으로 점철된 20세기 역사의 그림자

지독한 운명의 역사학자 통해 성찰

“역사적 사건 속 보이지 않는 심연 담아

가해자의 고백이 비극을 끝낼 수 있어”

이 소설 주인공으로 중국 전통악기 ‘얼후’ 연주자이자 재야 역사학자인 워이커씽은 지독한 운명의 소유자다. 그는 어머니가 일본군에 의해 강간당해 태어난 비극적 인물이다. 물론 일본군 아버지가 누구였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에게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피가 함께 흐른다. 그는 일곱 살 때 어머니가 들보에 목을 매 자살한 것을 목격했다. “(더욱 서글픈 것은)역사가들이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보이지 않은 심연이 있다는 사실이오. 그 심연 앞에서 역사가의 언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소. 난징학살에 그런 심연이 있소.”(229쪽) 그는 심연 속에 잠겨있는 심연의 인물인 것이다.

워이커씽은 ‘난징학살 심포지엄’에서 말한다. “아우슈비츠의 야만이 아리안 민족의 순결을 위한 것이었다면, 난징학살의 야만은 한 인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희귀한 갑각류와 미키마우스를 좋아했고 영국식 조반을 즐겼던 한 인간을 일본인은 신으로 섬겼습니다.”(43쪽) 일본 천황제는 천황을 초월적 신으로 만들어 아예 인간적 죄악의 책임을 묻지 못하게 만든 거다. “(천황과)국가를 위해 죽는 것, 그 피 흘림은 성스러운 행위라는 믿음이 야스쿠니 신앙의 본질이오.”(159쪽) 죽은 자의 영혼을 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성스러운 황홀’이 지독한 ‘야스쿠니 마술’이다. 난징의 죄악을 ‘인류사에서 유일무이한 원폭 희생국가’라는 피해의식 속에 지워버린 것이 일본이다.

소설 제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워이커씽도, 사죄하지 못하는 일본도 ‘발 없는 새’다. 이 지상에, 역사의 본 궤도에 안착하지 못하는 거다. 현대사의 비극과 과거사 매듭을 아직 해결하지 못한 동아시아의 현재가 ‘발 없는 새’일 거다. 알다시피 ‘발 없는 새’의 모티브는 영화 ‘아비정전’에 나오는 장궈룽(장국영)의 유명한 대사에서 따왔다.

여기서 소설은 동아시아적으로 확대된다. 2003년 만우절에 투신자살한 장궈룽, 영화 ‘패왕별희’의 감독 첸카이거, 〈난징의 강간〉을 써서 난징학살을 세계적으로 고발한 중국계 미국인 작가 아이리스 장, 그리고 난징에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간 화자의 고모할머니, 무용가 최승희(1911~1969)도 등장한다. 작가는 첸카이거의 〈나의 홍위병 시절〉과 아이리스 장의 〈난징의 강간〉이 장편을 쓰는 큰 징검돌이 됐다고 말한다.

특히 첸카이거의 경우, 어린 시절 문화혁명의 홍위병에 휩쓸리면서 예술가 아버지를 부정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시대적 야만에 대한 아픈 성찰이 영화 ‘패왕별희’였고, 〈나의 홍위병 시절〉이었다. 난징학살과 함께 문화혁명의 어두운 역사는 동아시아의 큰 상흔 중 하나다. 전쟁의 폭력과 권력의 억압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서 터져 나오는 절규다. “인간이란 존재는 이토록 비극적이오. 역사란 비극적 존재가 그리는 집단적 삶의 궤적이오. 그러므로 역사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비극의 궤적을 들여다본다는 것이오.”(239쪽)

비극의 궤적은 끝이 없다. 〈난징의 강간〉을 쓴 아이리스 장은 실제 2004년 자살했다. 일본 극우 세력들에게 협박당하다가 우울증에 걸렸던 거다. 역사, 악의 실체는 불가해하다. 아이리스 장은 소설에서 “희생자란 말은 여느 말과 다르다”고 말한다. 난징학살의 희생자들이 그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밝히고 있었다고 한다. “그분들의 희생 자체가 역사의 캄캄한 내부를 밝히는 진주 같은 발광체였던 거예요.”(114쪽) 그는 불가해한 역사 속에서 빛을 봤고, 그 속으로 사라진 거였다.

동아시아의 여전한 역사적 짐 책무 비극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작가는 말한다. “가해자가 자신이 가해자임을 고백해야 하는 것이오.”(241쪽). 워이커씽의 절규가 아프다. “오랫동안 나는 희생자라고 생각했소. 보이지도 않는 아버지를 증오하는 이유가 충분했소.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가 가해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소. 내 존재 자체가 어머니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이니. 그 고통의 절정이 어머니의 죽음이었소. 내가 어머니를 죽인 것이오. 그러니 가해자라고 생각해도 이상할 것 없지 않겠소. 나는 희생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이오.” 동아시아가 여기에 이르러야 하는 거다. 정찬 지음/창비/252쪽/1만 4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