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태초에 해파리부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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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민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

장마가 곧 시작된다고 한다. 이달 초에는 제주에서 독성 관해파리가 출현했다고 보도됐다. 장마가 끝나면 본격적인 여름철이 이어질 것이다. 제주도 연안에 나타난 독성 관해파리는 이제 곧 남해안에 상륙하고 그 후에는 동해안으로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에도 동해안의 울진과 삼척 지역에서 해파리 쏘임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부산 역시 7월 1일 해수욕장 전면 개장을 앞두고 있어서 제주에 출현한 관해파리의 진로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해파리(Jellyfish)는 캄브리아기로 불리는 약 6억~5억 년 전 지구상에 있는 동물계에서 가장 먼저 출현한 종이다. 화석에서 발견된 당시의 해파리는 현재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해파리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종 80% 이상이 전멸한 다섯 번의 대멸종(mass extinction) 사건을 극복하고 살아남은 종이기도 하다. 해파리는 산소 호흡을 하는 등 진화를 계속해 왔다. 이동할 때 방향성도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5억 년이라는 긴 여정 동안 진화를 거듭해 온 결과가 현재와 같은 상태이다. 인간이 질색하는 해파리 쏘임은 그들의 방식으로 하는 먹이 활동이다. 쏘임으로 플랑크톤이나 작은 치어를 마비시키고 섭이하는 방식인 것이다. 모든 동물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먹이 활동을 한다고 생각하면 쏘임도 이해가 된다.

지구상 동물계 중 가장 먼저 출현
해파리 쏘임 생존 위한 먹이 활동
기후변화·수온 상승 우리 곁으로
환경오염 경각심 주는 공존 대상

관해파리는 유전적으로 대단히 흥미 있는 종이다. 40~50m에 달하는 관해파리는 여러 마리가 붙은 형태로 각각은 고유의 임무를 맡는다. 여러 마리 중 일부는 생식, 일부는 먹이 활동, 또 일부는 유영을 담당한다. 2020년 호주 인근에서는 길이가 119m에 달하는 관해파리가 발견되어 지구상 가장 긴 동물로 보고되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렇게 긴 형태의 해파리를 한 마리로 봐야 할지, 여러 마리로 봐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생태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관찰과 관심이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의 방식으로 진화하면서 해양환경에 적응해 왔고, 생태계의 구성원으로 생태적 지위(ecological niche)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생태계의 이치다.

해파리의 분포는 해류나 영양염, 수온, 섭이 능력, 산소 농도 등과 같은 환경 요건에 달렸다. 특히 한국,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 연안에서는 꾸준히 증가하는 모습을 보여 한반도 연안에 출현 빈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국내 해역에서는 2014년에 관해파리가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본래 아열대 지역에 서식하는 해파리가 해수면 수온 상승으로 한반도까지 진출하게 된 것이다. 기후변화로 해수면 온도가 계속 올라갈 것으로 보이니 관해파리 출현도 더 잦아질 것이다. 적조생물이 일시에 대증식(bloom)해 적조현상을 일으키는 것과 같이 해파리가 대증식해 나타날 수도 있다니 두려운 일이다.

최근엔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어종 감소가 회자된다. 수온 상승으로 동해안에 명태가 사라진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돌아오지 않는 그들의 자리는 비슷한 생태적 지위를 가진 다른 동물로 채워진다. 상위포식자와 비슷한 생태적 지위를 갖는 해파리는 어류 감소에 따라 증가한다는 설명도 있다. 그러나 가끔씩 나타나는 해파리와 어류의 감소를 직접적으로 연관시키기는 어려워 보인다. 어쨌든 해파리는 우리나라 연안에 더 빈번하게 출현할 것으로 보인다. 수온이 계속 상승하고, 인간이 만든 구조물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평하고 딱딱한 구조물은 해파리 폴립(polyp)이 고착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구조물이 많은 동해안에서 폴립 형태의 해파리가 대량으로 서식하고 있다고 보고된다. 해파리는 온배수 배출구를 막히게 할 정도로 환경 요인에 적응하면서 번성하고 있을 뿐이다.

해파리는 대부분 자유 유영을 하면서 살지만, 더러는 고착 생활을 한다. 여러 성장 단계를 거치지만, 경우에 따라선 중간 단계를 건너뛰기도 한다. 환경 맞춤형 생활을 하는 것이다. 해파리는 그들의 방식으로 해양환경에 적응하고, 그들의 방식으로 지구 생태계를 이루고, 생태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해파리는 기후변화와 수온 상승으로 우리 곁으로 다가온 것이다. 우리가 가진 생태적 지위는 해파리가 가진 생태적 지위와는 많이 다르다. 어찌 보면 해수욕장 물속이라는 그들의 영역으로 우리가 들어간 것이다. 딱따구리와 동고비가 한 그루 나무에서 고유의 생태적 지위를 누리면서 공생하는 모습을 본다. 해파리와 인간도 각각의 생태적 지위를 누리면서 지구상에서 공존해야 하지 않을까. 해수욕장에서 관해파리와 조우하면, 너무 미워하지 말고 건드리지만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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