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반구대 암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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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고승 원효가 반고사(磻高寺)에 머물렀다는 이야기가 에 전한다. 삽량주 영취산에 수도승 낭지가 살았는데, 그 서북쪽에 있던 원효가 낭지의 지도 아래 과 을 저술했다는 기록이다. 반고사는 울산 대곡천 반구대 근처에 있었던 모양이다. 반구대(盤龜臺)는 거북 모양의 넓은 바위라는 뜻인데, 반고사에서 나온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여하튼 반구대는 정몽주, 정선 등 많은 역사적 인물의 흔적이 남은 절경으로, 원효의 반고사가 있었을 법한 자리다. 1970년대 초 이 반고사를 찾기 위해서 동국대 연구팀이 대곡천 인근을 뒤지다가 천전리의 암벽조각을 발견했고, 재조사 과정에서 대곡리 암벽조각도 발견했다고 한다.

반구대 암각화는 기실 반구대와는 동떨어진 다른 암벽에 있다. 반구대가 위치한 계곡에 있는 암각화라는 의미인데, 그 때문인지 ‘반구대 암각화’라는 명칭의 유래를 보자면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동국대박물관의 1983년 발굴조사보고서에는 천전리와 대곡리의 암벽조각을 통틀어 ‘반구대 암벽조각’이라 했고, 이후 암벽조각 대신 암각화라는 말을 썼다. 두 암각화가 국보로 지정될 때는 이름이 달랐다. 천전리 암각화는 1973년 ‘천전리 각석’(국보 147호)으로, 대곡리 암각화는 1995년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로 지정됐다. 반구대 암각화에 천전리 암각화는 빠진 것이다.

그런데 울산시가 2010년 두 암각화를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릴 때는 ‘대곡천 암각화군’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쓰더니, 2019년 우선등재목록 신청서에는 ‘반구대 계곡의 암각화’(Petroglyphs in the Bangudae Valley)로 바꿔 기입했다. 반구대 암각화가 국보를 가리킬 땐 대곡리 암각화만 대상인데 반해, 세계유산 신청 땐 천전리와 대곡리의 암각화를 합쳐 지칭하는 말이 된 것이다. 혼선이 빚어졌고, 두 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문화재위원회의 등재신청후보 심사에서 보류 결정이 내려졌다. 세계유산 등재 신청 직전 단계에서 제동이 걸린 것이다. 두 암각화의 보존관리 대책 미흡도 지적됐지만, 명칭의 불확실성도 보류 결정의 주된 이유라고 한다. 자칫 10여 년에 걸친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어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결과다. 탈락이 아닌 보류라고 하니 기회는 남은 셈이다. 향후 명칭에 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길 바란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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