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수국 숨겨 놓은 비밀의 화원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경남 고성 민간정원 두 곳

경남 고성군에는 ‘비밀의 화원’ 두 곳이 있다. 해마다 6월이면 수국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곳이다. 산골짜기 숲속에 자리를 잡은 힐링의 공간이다. 시원한 숲을 걸으며 화려한 수국을 구경하러 고성으로 달려간다.

그레이스 정원
15년간 가꾼 16만 평 숲 곳곳에 수국 30만 주
숲속 도서관·숲속 교회에 메타세쿼이아 길도


■자연의 치유 그레이스 정원

그레이스 정원은 고성군 상리면에 있는 수국 정원이다. 땅 주인인 조행연 씨가 15년 동안 숲을 가꾸고 정리해 2년 전 경남 민간정원 6호로 정식 개장했다. 민간정원은 개인이 연면적 5000㎡ 이상의 규모로 운영하는 곳이다.

16만 평의 넓은 숲속 곳곳에는 아름다운 수국 30만 주가 피어난다. 수국이 만개하면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다. 올해는 봄 가뭄 때문에 수국 개화가 여느 해보다 늦다. 모든 수국이 100% 만개한 것은 아니다. 이달 말이나 돼야 화사하게 활짝 피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구석구석 오솔길을 잘 찾아다니면 제법 예쁘게 피어난 수국 무리를 볼 수 있다. ‘설마 저 곳에 꽃이’라고 생각하는 좁은 길에서 군락을 지어 서서히 피어나는 수국이 손님을 기다린다.

당장 그레이스 정원에서 수국을 봐야겠다고 생각한다면 본관 맞은편 베데스다 연못 인근의 수국정원 또는 정원산책길을 찾으면 된다. 이곳에서는 다른 곳보다 많은 수국이 무더기로 피어나는 중이다.

그레이스 정원에서는 다양한 수국 품종을 볼 수 있다. 재래종인 산수국이 특히 많다. 꽃송이가 큰 서양 수국과는 매우 다르게 생겼다. 아기자기하고 화사하면서 품위가 느껴진다. 색도 진보라, 연보라, 자주까지 다채롭다. 꽃이 피어난 시기에 따라 색은 조금씩 다르다.

그레이스 정원에서는 수국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꽃산딸나무, 꽃창포, 수레국화, 옥잠화 등 다양한 꽃을 즐길 수 있다. 게다가 정원 곳곳에는 온통 푸른색이 가득한 오솔길이 만들어져 있다. 온 몸을 휘감아 도는 짙은 풀 냄새를 맡으면서 꽃과 미소를 나누노라면 ‘이거야말로 자연의 치유’라는 생각이 든다.

숲속 정원 곳곳에는 마음을 내려놓고 휴식할 수 있는 장소도 있다. 먼저 이색적인 숲속 교회가 보인다. 교회 뒤편에는 숲속도서관 두 곳이 있다. 도서관 바깥에 테이블과 의자가 설치돼 누구나 앉아 쉴 수 있다.

잠시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앉으면 숲속 개울을 따라 흘러가는 물소리가 졸졸거린다.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가 짹짹거리는 소리도 귀를 스친다. 시원한 바람이 나뭇잎을 살랑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산 아래에서 들리는 자동차 소음, 사람의 고함은 여기에서는 들을 수 없다.

수국정원에서 꽃 구경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잊지 말고 메타세쿼이아 길을 걸어야 한다. 물론 전남 담양처럼 수십 년 이상 된 고목이 버티고 선 것은 아니다. 그곳처럼 길이 넓어서 여러 명이 길게 늘어서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두어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지나갈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곳에는 제법 무시할 수 없는 매력이 흐른다. 담양과는 느낌이 다르다. 사진을 찍어도 아기자기하고 깜찍하다. 산책을 마친 뒤에는 본관의 카페에서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도 괜찮다.

만화방초
이름대로 ‘향기로운 꽃과 풀이 가득한 공간’
수국과 함께 편백숲 벤치서 피톤치드 산림욕

■꽃과 풀이 가득한 만화방초

민간정원 제8호인 만화방초는 치유하고 힐링하는 곳이다. 땅 주인이 30년 동안 노력을 들여 다듬고 가꾼 공간이다. 아주 이색적인 정원 이름은 고성 출신으로 국문학의 거장인 고 김열규 교수가 지었다. 풀이하자면 ‘향기로운 꽃과 풀이 가득한 공간’이다. 만화방초 입구 아래쪽에서는 제법 넓은 주차장을 짓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만큼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다.

고성군 동해면의 만화방초에서도 수국은 만개하지 않았다. 매표소를 지키는 주인 말로는 겨울 추위와 봄 가뭄 때문이다. 매표소를 지나면 벨라의 정원이 나타난다. 주인 말대로 전체적으로 수국이 제대로 피지 않았다. 그래도 한쪽 구석에는 꽤 화사한 표정을 한 수국이 활짝 웃는 걸 볼 수 있다. 분홍색, 보라색 수국이 깻잎처럼 생긴 파란 잎 사이에서 미소를 짓는다. 수줍은 듯 잎 사이에 숨은 분홍색 꽃도 보인다. 독특한 모양이다 싶어 휴대폰으로 검색하니 이 꽃은 산수국이다.

벨라의 정원을 지나 편백숲으로 이어지는 오솔길로 들어간다. 비스듬한 언덕에 주홍색 수국이 잔뜩 피었다. 맞은편 숲속의 편백나무는 시원하게 하늘로 가지를 뻗었다. 오솔길에서는 다채로운 향기가 흘러 다닌다. 사람들은 편백숲에 설치된 벤치에 앉아 피톤치드 산림욕을 즐긴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몸이 건강해지는 것 같다.

편백숲 아래로는 개울이 보인다. 가뭄을 입증하듯 개울의 물은 완전히 말라버렸다. 물이 졸졸 흐르기는커녕 한 방울도 없다. 개울 양쪽에는 수국이 자란다. 숲쪽에는 하얀색, 건너편에는 보라색 수국이다. 지금보다 조금 더 만개하면 꽤 화사하게 볼 만할 것 같다.

편백숲에서 돌아 나오면 기억의 동산이 나타난다. 조용히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추억에 잠기는 장소다. 잠시 마음을 비울 시간을 갖도록 탁자와 의자가 여러 개 놓였다. 햇빛에 색이 바랜 장독 수십 개도 설치됐다. 장독 아래로는 차나무가 자란다. 그 너머로는 고성 전경이 펼쳐진다. 산 아래로 전경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눈이 시원해진다.

기억의 동산에서 70대로 보이는 노부부가 어린 손자를 돌본다. 딸로 보이는 여성은 나무 아래에 펼친 돗자리에 누워 잠들었다. 노부부의 얼굴에서는 환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손자가 넘어질까 바람에 날려갈까 이리저리 허둥댄다. 그들이 이곳에서 떠올리는 과거의 기억은 무엇일까.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서 웃으며 나눌 미래의 기억을 만드는 것일까.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