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가난한 부산’의 선배라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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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열 경제부 차장

얼마전 부산상공회의소가 내놓은 한 보도자료가 기자의 마음을 내내 불편하게 했다. 부산 MZ세대 구직자들의 일자리 인식 조사 보고서였다. IMF 외환위기 중 사회에 던져진, 현재 40대 후반의 ‘꼰대력’ 충만한 기자는 지금껏 ‘언제 취업이 쉬웠던 시절이 있기는 했나’라고 생각했다. 청년 일자리에 대한 문제 제기는 늘상 되풀이되는 것이었다. 보고서는 꼰대의 이런 관성을 흔들었다.

부산의 청년들이 부산을 떠나기 싫어한다는 점에서 일단 놀랐다. 10명 중 8명이 ‘노인과 바다’라 불리는 이 도시에서 취업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대체로 부산을 떠난다. 부산은 그들이 기대하는 만큼의 임금을 제공할 경제적 능력이 없다. 보고서에 따르면, 부산 기업의 20%가 사회초년생에게 2600만 원 정도의 연봉조차 지급할 여력이 없었다.

부산 청년 80%, 부산 취업 원해도
생활조차 힘든 저임금에 타지行
고임금 일자리는 되레 인재 부족
양질 일자리 확대·인재 양성 절실

연봉 2600만 원이면 최저시급을 겨우 면하는 정도다. 세금을 제하면 그나마도 또 쪼그라든다. 과연 그 돈으로 청년들이 미래를 꿈꾸고 희망을 저축하며 생활할 수 있을까? 40대 꼰대는 자신 없다. 대부분의 청년도 나와 비슷할 테다.

청년들이 바라는 연봉이 턱없이 높은 수준도 아니다. 조사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56.2%) 청년이 2600만~3000만 원 사이의 연봉을 원했다. 현실은? 연봉 2800만 원을 경계로, 그만큼의 연봉을 지급할 수 있는 기업의 수는 급격히 줄어든다. 구직자는 많은데, 기업은 없다. 3000만 원 이상의 연봉을 제시하는 기업은 전체의 30%에 불과했다. 이 정도라면 취업이 어려운 게 아니라 아예 취업을 포기하게 만든다.

이런 말, 한 번쯤은 들어봤을 테다. 요즘 젊은이들 힘든 일은 좀체 하려 하지 않는다, 제조업은 사람을 구하지 못해 난리다, 일자리가 없는 게 아니라 눈이 높은 거다, 등등. 그러나 부산의 청년들은, 눈이 높은 게 아니라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최소한의 삶의 비용을 벌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난다. 적어도 우리 땐 적은 월급으로도 꿈은 꿀 수 있었다. 그러나 자산 가격이 폭등하고 빈부 차가 격하게 벌어진 지금은 그조차 힘들다.

보고서는 청년들의 기대 연봉과 실제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연봉의 격차, 딱 400만 원만큼을 청년들에게 더 줄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면 그들의 ‘탈부산’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거라고 제언한다. 기자는 딱 절반의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최저시급 수준에 머무른 저연봉 기업들의 연봉 수준을 끌어올리는 작업은 분명 절실하다. 그런데, 연봉이 높아질수록 문제의 초점은 바뀐다.

보고서의 다른 수치를 살펴보자.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이 제시하는 연봉이 3200만 원을 넘어설 경우 구직난이 아닌 구인난이 발생한다. 청년들의 평균 기대치보다 연봉이 더 높으면 구직자가 몰려야 할 텐데, 정작 기업이 일할 청년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가 부족해서 생겨나는 현상이다. 임금 수준을 높이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인재를 양성하는 일이란 방증이다.

지역 인재풀이 부족하다는 지적 또한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수도권 기업이 부산 이전을 고민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사람을 뽑으면 부산 근무를 꺼린다. 부산에서 사람을 뽑으려니 우리가 원하는 인재가 부족하다.” 부산 이전을 준비하는 한 수도권 기업 관계자의 말이다.

다만 그분의 이야기도 문제의식의 앞뒤가 바뀌었다. 인재풀이 없어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지기 힘든 구조이기에 앞서, 양질의 일자리가 보장될 때 그에 걸맞는 인재 양성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이슈가 된 반도체학과 문제만 해도 그렇다.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학과는 학생이 미어터지는데, 지방대에선 학과를 만들어도 학생이 모이질 않는다. 수도권 대학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대기업과 손잡고 반도체학과 졸업생의 취업을 보장한다. 반면 비수도권 대학은 졸업을 해도 취업할 곳이 없다. 관련 분야의 일자리는 ‘입도선매(立稻先買)’ 당한(?) 수도권 대학 졸업생들이 싹쓸이한다.

‘한계 연봉’ 기업의 연봉 수준을 끌어올리고,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그 과정에서 기업과 학교가 함께 지속가능한 인재 양성·공급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부산시도 지역 상공계도 이미 잘 알고 있는 부분이며, 많은 노력과 시도가 진행 중이다. 그래도 좀더 분발해달라 부탁 드린다. 그리고 청년들도 조금만 더 힘내주시길 바란다. 사실, ‘힘내라’는 무심한 말조차 미안해지는 시대이긴 하다. 가난한 부산의 선배라 미안하다.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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