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계보 이은 붓과 철필… 부자의 전각 인생 서집에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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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공원’과 다대진동헌의 ‘수호각(睡虎閣)’ 등의 현판을 새긴 부산시 무형문화재 안정환(79) 전각장이 60년 전각 인생의 작품을 총괄해 350여 쪽의 을 냈다. 그는 국보급 전각 명인 청사 안광석(1917~2005)의 삼남으로 아버지의 맥을 이었다. ‘사계’(斯溪)는 아버지의 호 청사(晴斯)와 자신의 호 청계(晴溪)를 아우른 이름이다.

부자의 예술 맥은 추사 김정희에 닿아 있다. 김해 부농의 아들로 태어난 아버지 청사는 일제강점기 징용을 피하기 위해 범어사로 출가했다. 이때 스승으로 만난 분이 근대 최고 선지식인 동산 스님이다. 동산 스님은 청사가 각(刻)에 재주를 보이자 “각도 참선과 다르지 않다”며 스님의 외삼촌이자 당대 최고의 전각가인 위창 오세창 선생을 소개했다. 그 인연으로 청사는 추사-이상적-오경석-오세창으로 내려온 추사 계보를 이을 수 있었다.

부산 무형문화재 안정환 전각장
부친 안광석 명인 작품 80점에
자작품 990점 모아 서집 펴내
돌판 새긴 ‘금강반야바라밀경’ 등
60년 작품 활동 대표작 ‘눈길’


아버지 청사의 칼은 서릿발 같았다고 한다. 이승만~김영삼에 이르는 역대 대통령들이 도장을 새겨줄 것을 청했으나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 도법(刀法)이 도법(道法)에 닿은 이치가 삼엄했다. 청사의 다른 호가 세빙관(洗氷館)인데 ‘차가운 얼음조차 씻어내는 투명하고 맑은 경지’가 ‘전각의 마음’이라는 거다.

의 앞쪽 100여 쪽에는 아버지의 작품 80점과 지극한 마음으로 이를 수 있는 ‘도법(刀法)과 전법(篆法)’에 대한 글을 실었고, 뒤쪽에는 전각 각존 서법 판각으로 분류해 청계 자신의 작품 990점을 실었다. 그는 “책에 실린 작품들은 붓과 철필과 씨름한 60년, 얼추 내 모든 작품(1500여 점)의 3분의 2 정도가 된다”고 했다. 그는 “전각은 외로운 수행”이라고 했다. 외로운 수행이기 때문에 그것을 형상화한 것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글과 그림의 경계를 아찔하게 넘나들고 비켜나는 작품들은 이상한 매혹이 있다. 고졸함이 멋스럽다.

그는 수많은 작품 중에서 대표작으로 3점을 거론했다. 첫 번째, 5900자를 12장의 돌판에 새긴 ‘금강반야바라밀경’은 몇 년을 두고 새긴 작품이다. “거의 완성 지경에라도 칼이 잘못 나가 돌이 깨지면 처음부터 다시 작업해야 했던 것이 금강경이었다.” 두 번째, 의상 대사가 화엄사상의 요지를 210자로 도해한 ‘화엄일승법계도’를 느티나무에 새긴 것이다. 조형성을 가미한 이 작품은 탁본할 수 있도록 글자를 도장 모양으로 거꾸로 새겼는데 아버지 청사 선생이 같은 작품을 만든 것 외에는 잘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요컨대 불심에 닿은 아버지의 예술혼을 잇고 있다는 것을 함축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세한도’ 판각은 추사로부터 이어지는 그의 전각의 뿌리를 드러낸 작품이다. 갈필의 세한도 그림과 그 그림이 품은 뜻을 적은 추사의 20행 글을 윤슬 일렁이는 파도 무늬 위에 새긴 판각은 정연하다. 그의 전각이 누대에 걸친 집대성이라는 것을 표현한 것이지 싶다. 양맹준 전 부산시문화재위원장은 “이 책이 우리 전각사에 소중한 보물로 자리매김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축사에 적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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