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귀한 줄 몰랐던 빨래방 직원, 스마트폰 어려운 빨래방 손님 서로에겐 너무 낯선 세상, 함께 건너 세대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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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복빨래방] EP 5. 세대 차이

어머님, 아버님은 유튜브 속 ‘산복빨래방’ 영상 보는 법을 하루에도 수차례 묻습니다. 영상 속 주인공들인 어머님, 아버님들이 ‘본인 출연’ 영상을 편히 볼 수 있도록 언제든 최선을 다해 살뜰히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이재화 PD

전차를 타고 산복도로에서 영도까지 갔던 이야기. 1980년대 산업화 시절, 출퇴근 시간이면 마을 계단에 콩나물처럼 인파가 몰리던 이야기. 빨래방을 하다 보면 듣게 되는 어머님, 아버님이 해 주시는 옛날이야기는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자연스레 어머님들과 우리는 ‘다른 세대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가기도 합니다.

요즘 모습을 봐도 그렇습니다. 단축번호를 꾹 눌러 전화를 거는 어머님들의 스마트폰 사용 방법부터, 건조기를 돌려 드려도 매번 햇볕에 빨래를 다시 말리는 아버님까지. 하지만 빨래방에서 이야기 나누고 함께 지내는 사이 이 모든 차이는 ‘세대 공감’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물 때문에 울어 본 적 있어?
펑펑 물 쓰는 빨래방 낯선 어르신
물 서러움 겪던 옛 기억 새록새록
엄마가 어떻게 전화를 했어?
빨래방이 ‘스마트폰 교실’로 변신
딸네 전화는 물론 유튜브 댓글도
세대 차이 너머 공감의 장소로


■물 귀했던 마을

빨래방에서 일하면서 생긴 새로운 습관이 있습니다. 매일 아침 날씨가 어떨까 걱정하는 일입니다. 비가 오면 어머님들이 빨랫감 들고 높은 계단을 어떻게 오르실까 걱정이 됩니다. 오래된 폐가를 개조한 탓에 천장에서 물이 새지는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날이 더우면 어머님들이 덥다고 빨래방을 찾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우려도 됩니다. 마치 동화 ‘소금 장수, 우산 장수’의 엄마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어머님들이 빨래방에 앉아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최근 가장 큰 걱정은 단연 가뭄이었습니다. 비 구경하기 힘들었던 지난 한 달이었습니다. 밭에서 소일거리로 상추, 깻잎, 오이 같은 푸성귀를 키우는 어머님들은 비가 와야 한다고 걱정입니다. 어머님들이 가져다주는 수박, 참외가 너무 달아 감탄사를 내뱉어도 비가 안 와서 과일이 달다며 가뭄 걱정은 이어집니다. 단골인 이영희 어머님은 물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옛 기억에 젖습니다. “요즘은 세상 참 좋아졌어. 말도 못해, 옛날에 당했던 물 서러움 생각하면… 물 때문에 울어 본 적 있어?”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콸콸 나오고 빨래방에서만 한 달에 20t가량의 물을 쓰는 요즘 세상에 ‘물 서러움’이라는 말은 낯설게 들렸습니다. 산 중턱 호천마을은 물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였던 시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40여 년 전 호천마을에 왔을 때 어머님은 ‘외지 사람’이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우물에 뚜껑을 닫고 자물쇠를 걸어서 물을 차지했습니다. 외지에서 온 어머님 몫은 없었습니다. 호천마을에서 1km 이상 떨어진 안창마을 한 사찰 옆 개울가로 물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어머님들은 집마다 옛날에 있던 커다란 물단지에 양동이로 물을 퍼다 놓으면 그렇게 마음이 푸근했다고 합니다. 시동생, 시아버지까지 딸린 대식구에 스무 양동이 정도는 밥 해 먹는 걸로도 금세 사라졌습니다. 힘들게 퍼 온 물로 세수는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빨래는 개울가에 이고 지고 가서 했습니다. 옛날에는 1주일씩 옷을 입는 일도 많았다고 합니다. 겨울에는 얼음물 빨래도 예삿일이었습니다. 물 귀한 산꼭대기 마을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다 살았다고 합니다.

세월이 흘렀고 동네에 ‘물차’가 오고 물을 파는 ‘물장수’가 생기면서 고생은 조금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요즘도 시집 간 딸과 사위가 와서 집에서 설거지를 하면 어머님은 설거지를 못하게 합니다. 물을 펑펑 쓰기 때문입니다. “지금 빨래방에서 공짜로 물 콸콸 써서 빨래해 주는 거 보면 기분이 이상하다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그렇게 물 귀하던 마을 어머님들의 서러움이 빨래방에서 조금이나마 씻겨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빨래 대신 스마트폰

“응, 딸아. 그냥 전화해 봤다. 앞으로 자주 연락할게.”

점심을 먹은 직후 나른함이 마중 나올 무렵, 빨래를 맡기러 온 어머님이 딸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머님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자, 전화기 뒤 떨떠름한 따님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어떻게 전화 걸었어?”

빨래방에 느닷없이 ‘스마트폰 교실‘이 열린 계기는 사소했습니다. 빨래를 맡긴 어머님이 저희에게 “도통 휴대폰 쓰는 방법을 모르겠다” “예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전화기가 좋았다”며 투덜거렸습니다. 70세가 넘은 어머님에게 1년 전 자식들이 바꿔 준 최신 스마트폰은 ‘애물단지’나 다름없습니다. 자식들이 단축번호를 지정해 줬지만, 그마저 자꾸 다른 사람한테 전화가 잘못 가서 특별한 일 아니면 쓰지 않게 됐다고 합니다. “1번 딸을 눌러야 하는데 11번 사위한테 자꾸 전화가 가. 할 말도 없어.”

‘전화 거는 방법을 알려드리는 것쯤이야!’ 친절한 강사로 변신한 모습을 상상하며 어머님 옆에 앉은 것도 잠시. 순식간에 땀이 삐질삐질 나는 듯한 난처함에 사로잡혔습니다. 왼쪽 아래에 있는 초록색 통화 버튼을 누르자 ‘최근 통화 목록’이 주르르 뜹니다. 또다시 왼쪽 아래에 있는 ‘키패드’라는 작은 글씨를 눌러야 하지만, 이를 찾기 어려워하는 어머님. 그렇게 한참을 씨름한 끝에야 단축번호 1번에 저장된 따님한테 전화를 걸 수 있게 됐습니다.

화살표, 숫자 버튼이 물리적으로 있는 예전 휴대폰과는 달리, 스마트폰은 화면에 나와 있는 ‘작은’ 글씨를 잘 읽고 정확히 눌러야 합니다. 하지만 어머님들에게 휴대폰 글씨는 지나치게 작은 경우가 많습니다. 빨래방에 온 또 다른 어머님은 아예 문자를 못 본다고 합니다. 글씨가 너무 작아 읽는 데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설정에서 화면 글씨를 크게 해 드리자 ‘그나마 좀 읽을 수 있겠다’며 환한 웃음을 보였습니다.

■캡처 대신 스크랩

여러분은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사진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하시나요? 요즘 20대는 아날로그 감성을 위해 필름 사진을 인화하기도 한다지만, 역시 대세는 ‘디지털’이죠. 맛있는 음식, 눈에 담고 싶은 자연 경관,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저녁 자리에서 우리는 손쉽게 휴대폰으로 촬영합니다.

하지만 휴대폰 사용이 낯선 어머님들에겐 어려운 일입니다. “신문에 나온 사진 간직하고 싶어서, 이렇게 박스에 붙이고 다녀.” 산복빨래방 1화가 <부산일보> 지면에 나간 지 얼마 뒤, 한 어머님이 종이 박스에 신문을 붙여 액자처럼 가지고 왔습니다. 감동 받은 빨래방 식구들은 어머님께 인터넷으로 기사를 보는 법, 사진을 저장하는 방법을 정성껏 알려드렸습니다.

유튜브에 연재 중인 산복빨래방 영상을 보기 힘들어하는 분도 많습니다. “나도 방송에 나왔다는 데 어디서 볼 수 있노?”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빨래방에 온 어머님들 옆에 앉아 영상을 보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유튜브로 산복빨래방 채널의 ‘좋아요’와 ‘구독’을 대신 누르는 흑심(?)도 발동합니다. 어머님들과 함께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올 때면 깔깔 웃으시며 ‘이걸 이제야 볼 줄 알다니 안타깝다’며 무릎을 칩니다. 이렇게 휴대폰 사용법을 배운 어머님들은 매 회 유튜브 영상에 따뜻한 댓글까지 달아 줍니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일상에서 가족, 지인,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하지만 이를 당연하게 사용했던 젊은 세대와 달리 마을 어머님들은 어색하고 불편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빨래방에서 직접 얼굴을 마주 보며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눌 때와 사뭇 다르게 세대 차이를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머님들이 휴대폰을 통해 더욱 주변과 단절되지 않도록, 세대 차이가 아닌 공감으로 나아가기 위해 오늘도 빨래방 식구들은 열심히 어머님들의 일일 스마트폰 강사로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김준용·이상배 기자·김보경·이재화 PD jundragon@busan.com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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