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우리가 제멋대로 재단할 게 얼마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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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하는 인간/박규철

찰랑대는 바다의 표면만 보고 심해의 해류를 짐작할 수 있을까. 바닷사람들은 그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하고 경외했다. 그 마음은 알지 못하는 대상에 관한 판단의 유보였다.

인간의 사고도 마찬가지였다. 이 태도는 우리가 판단하고 규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통찰에 가닿는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는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른바 회의주의로 일컬어지는 이 사유는 이른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에 의문을 던진다. 그 결론이라는 게 사회적 편견이나 오해에 기반한 독단적 확신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은 그러한 이성의 오류가 나올 개연성을 끊임없이 지적한 회의주의 철학자들과 지혜를 소개한다. 고대의 소크라테스와 피론부터 근대의 흄에 이르는 철학자들의 계보와 그들이 펼쳐낸 치열한 논쟁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제멋대로 재단할 게 거의 없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아울러 일상에서 회의주의자가 누릴 수 있는 삶의 지혜와 기술까지 배운다. ‘도구적 이성 비판’과 ‘구조주의’의 시원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회의주의를 통해 “내가 ‘나’로서 바로서기를 위한 철학”을 강조한다. ‘지적 자만’과 ‘심적 조급증’을 치유할 생활의 철학을 뜻하는 것이다. 독단주의자의 교만보다, 회의주의자의 지적 겸손이 지성인의 미덕에 더 어울린다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들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과정이리라. 그 다리를 건너면 진영 논리에 갇힌 한국 정치 환경의 어두운 민낯도 만날 수 있겠지. 박규철 지음/추수밭(청림출판)/448쪽/2만 원.

이준영 선임기자 g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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