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어느 가족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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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 문학평론가

야생 오리를 향해 돌을 던져 잔혹하게 살해한 이른바 ‘오리 가족 돌팔매질 학대 사건’으로 온라인 공간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도심 하천에 거주하는 오리 성체와 새끼들에게 돌을 던지는 사진까지 공개되면서, 학살자에 대한 공분이 증폭되고 있다. 더구나 해당 소식을 전하는 뉴스에는 수사관이 작성했다는 강렬한 경고장이 함께 포함되어 있곤 했다.

이 경고장에는 이례적일 정도로 분명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수사관은 “이곳에서 돌팔매질하여 오리를 죽이신 분들 읽어 주세요. CCTV 확인하여 전동퀵보드 동선 추적 중이므로 귀하들께서는 차후, 반드시 검거될 겁니다”라고 안내한 이후, “자진 출석하시면 자수로 인정해 드리겠으나 끝까지 오늘과 같은 제안을 거부하고 외면할 시 법에서 정하고 있는 가장 큰 처벌을 받게 될 것을 분명히 경고”한다는 엄중한 문구까지 부가하고 있다. 우리는 자연을 되살린다는 명목으로 복개되었던 하천을 열고 그곳에서 생태계를 이식하듯 되살리고자 노력해왔다. 이러한 노력은 실효를 거두면서, 서울을 필두로 부산, 대구, 전주 등의 주요 도시에서 가시적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되살아난 하천에서 운동이나 산책을 하고, 관광객들은 그곳에서 명물이나 생물을 구경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연에 대한 관심은 궁극적으로 ‘나 바깥’의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데에만 지나치게 집중된 것 같다. 왜냐하면 ‘나 안의 아름다움’을 만드는 데에는 아직 허술한 면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오리 가족 돌팔매질 학살 사건 충격
성체와 새끼 학대 사진까지 공개돼

인간 우위·자기중심 사고 표출된 듯
비극 초래한 독재자 생각과 흡사해
우월함에 대한 편견 버리는 계기로


오리를 학살하고자 하는 이는 극히 소수일 것이고, 대다수는 오리 학살에 반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오리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오리를 우리가 거두어야 하는 대상으로, 돌보아야 하는 피조물로만 다루지 않았나 하는 반성이 일기 때문이다. 만일 이러한 동물들이 인간이 돌보거나 간수해야 하는 어떤 것에 불과하다면, 반대로 우리 인간의 필요에 의해 언제든지 돌보지 않거나 간수하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 역시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천은 열었지만 우리 마음은 아직 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러한 우리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 그 결과로서 오리 가족의 몰살은 그 자체로도 끔찍한 범죄이지만, 그 범죄의 기저에 깔린 인간 우월주의자나 자기중심적 사고 역시 그에 못지 않게 끔찍하기 때문이다. 20세기까지 전 세계는 능력 있고 우월한 자들의 경쟁터로 전락해야 했다. 우월한 능력을 가졌다고 믿었던 이들은 한 국가를 장악하고, 그 국가가 다른 국가 역시 장악해야 한다고 의심 없이 믿었다. 그로 인해 전쟁이 발발하고 식민통치는 더욱 가혹해졌으며 표면적으로 식민지가 해방된 이후에도 경제적 예속을 통해 그 시절의 영화를 이어가려는 야심도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도 과거의 영광을 명분으로 포장한 몇몇 나라는, 우월함에 대한 편견을 버리려 하지 않고 있다.

오리 가족의 참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 이유 하나를 보태고 있다. 한 독재자가 자기가 꿈꾸는 세상을 멋대로 만들어내기 위하여 세상을 어지럽히듯, 힘이 세다고 믿은 어떤 인간들은 자신이 장악하고 있는 세상을 확인하기 위하여 오리 가족쯤은 없앨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은 크게 잘못된 것이며, 극히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더 큰 힘을 가지면 그 힘과 위험을 돌려, 더 큰 대상과 더 넓은 세상을 겨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도 그 독재자가 된 범인은 자신의 우월성과 자신이 만들려는 세상의 미래로 범죄 행위를 덮으려 할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볼 때, 오리 가족의 최후는 더 큰 가족이 겪어야 할 위험이 단초일 수도 있다. 오리 가족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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