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번엔 응급실, 분노성 방화 불안해서 살겠나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24일 밤 부산 서구 부산대병원 응급실 인근 환자분류소에서 60대 남성이 휘발유를 뿌리고 방화를 시도해 의료진과 환자들이 대피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부산경찰청 제공 24일 밤 부산 서구 부산대병원 응급실 인근 환자분류소에서 60대 남성이 휘발유를 뿌리고 방화를 시도해 의료진과 환자들이 대피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부산경찰청 제공

24일 부산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60대 남성이 불을 질러 의료진과 환자들이 황급히 대피하는 위험천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남성은 병원 1층 응급실 입구에서 자기 몸과 병원 바닥에 2리터짜리 생수통에 담긴 휘발유를 뿌리고는 라이터를 켰다는 것이다. 환자들이 몰려 있는 큰 병원에서 방화를 저질렀으니 실로 경악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차례 난동을 부리다 경찰에 제지당해 귀가한 뒤 병원을 다시 찾아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더욱더 충격적이다. 다행히 병원 의료진의 즉각적인 대처로 큰불로 번지지 않아 망정이지 하마터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최일선 의료 현장, 범죄에 무방비

‘갈등 공간’ 보호 근본 대책 마련을


응급실에 실려 온 아내를 의료진이 빨리 치료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성을 지르고 행패를 부렸다는 사실로 보아 분노성 방화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로 7명이 목숨을 잃고 48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가 발생한 게 불과 얼마 전이다. 그로부터 사흘 뒤엔 부산의 한 파출소에 인화 물질을 들고 위협하던 50대 남성이 체포되기도 했다. 이제는 응급실에까지 방화 범죄가 번지고 있으니 시민들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힘들다. 방화는 대규모 인명 살상을 낳는다는 점에서 가장 참혹한 범죄다. 2003년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로 192명이 생때같은 목숨을 잃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방화 현장에는 전국 주유소 어디서나 쉽게 구입할 수 있는 휘발유를 비롯해 구입 규제가 없는 가연성 액체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방화가 한 번 일어나면 대피할 틈도 없이 불이 급속하게 번져 극심한 피해를 낳는다.

이런 분노성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된 대표적인 안전 사각지대가 병원 응급실이다. 가장 최근인 15일에도 경기 용인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환자의 남편이 낫으로 의사의 목을 내리치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응급실은 국민 생명을 지키는 최일선의 필수 의료 시설이지만 방화와 폭행, 상해, 협박 등 범죄에 상시적으로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과 고통을 치료하는 병원이 되레 집단 살상의 현장이 되고 있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방화나 테러의 동기는 다양하지만 결국 자신의 불만을 해소하려는 복수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분노성 범죄는 단순한 개인의 일탈보다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갈등 사회의 한 얼굴로 보는 게 타당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위험 신호요, 더 큰 대형 참사를 예고하는 불길한 암시일 수 있다. 의료인과 환자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지키는 일은 이제 미룰 수 없는 숙제가 됐다. 그동안 법적, 제도적 방안이 없지 않았으나 별다른 실효성은 거두지 못했다. 차제에 병원 응급실뿐만 아니라 갈등과 분쟁의 소지가 큰 공적 공간에도 안전 매뉴얼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겠다. 정부가 경각심을 갖고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때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