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장마는 곧 끝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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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아 소설가

얼마 전 선물로 받은 하늘색 수국 한 송이를 꽃병에 꽂아 놓았는데, 외출을 했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물이 말라 반나절 만에 푹 시들어버렸다. 뒤늦게 물을 다시 채워줬지만 완전히 힘을 잃고 축 처져버린 꽃은 영영 고개를 들지 않았다. 모든 가능성을 완전히 소진해버린 것 같은 수국 한 송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건 마치 어떤 순간의 내 모습 같기도 해서 마음이 울적해졌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은 찾아온다. 나에게는 좀 자주 찾아온다는 것이 문제다. 시기적으로는 요즘 같은 장마철의 날씨도 한 몫을 한다. 해가 보이지 않는 회색빛 하늘과 축축한 공기, 아래로만 흘러내리는 빗물. 그런 날에는 몸과 마음이 자꾸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중력 이상의 어떤 힘이 나를 끌어당기는 것처럼, 누운 자리에서 좀처럼 일어나기가 힘들다. 그런 나를 겨우 일으켜 세우는 것은 내게 주어진 역할들이다. 9시까지 출근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다. 아이를 챙겨야 하니까 밥을 차리고 함께 숟가락을 든다. 마감일까지 글을 보내야 하니까 컴퓨터를 켜고 키보드에 손을 얹는다. 그 밖의 무수한 역할들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 역할도 없었다면 여전히 내 몸은 다 녹아버린 캐러멜처럼 바닥에 흐물흐물 들러붙어 있을지도 모른다. 길고 지루한 우기 동안 이런 상태로 겨우 버티는 사람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해를 오래 못 보면 시들시들해지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다.

장마가 끝나면 우리는 괜찮아질까. 글쎄. 시간은 가만히 있어도 흘러가고 계절은 때가 되면 바뀌는 것이니까, 장마는 곧 끝이 나고 본격적인 한여름이 시작되겠지. 뜨거운 햇빛을 넘치게 받을 수 있는 여름, 아이들은 기다리던 방학을 맞이하고 직장인들은 여름휴가를 얻게 될 것이다. 바이러스 때문에 ‘집콕’하며 2년 넘게 별러왔던 시간들. 마침내 팬데믹이 소강 상태로 접어들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었으니, 이번 여름에는 휴가라는 걸 제대로 가보겠다고 일찌감치 마음먹은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몇 달 사이에 치솟아버린 물가, 별로 산 것도 없는데 십만 원은 우습게 찍혀버리는 마트 영수증, 금세 텅 비어버리는 통장 잔고…. 숙소를 검색하고 계산기를 두드리다 올해도 휴가를 포기하겠다는 사람들이 꽤 보인다. “차라리 코로나로 제약이 많을 때가 더 나았어, 그 땐 다 못 갔으니까.”하고 푸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냥 계속 비나 오라고, 어차피 놀러 갈 돈도 없는데 못 가는 마음 덜 억울하게 비나 계속 내리라고, 서글픈 기우제를 지내는 이도 있다.

‘포기’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하던 일이나 하려던 일을 도중에 그만두어 버림.’ 처음부터 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하려다가 마음을 접는 것이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장바구니에 담았던 물건을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 배우고 있던 취미 활동을 그만둔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애써 접는다. 오래 꿈꾸었던 여행을, 포기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뭔가를 도중에 그만두어 버릴 때는 마음이 쓸쓸해진다. 그 이유가 나의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외부의 문제라면 더 그렇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이제 1주에 최대 92시간까지도 노동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중이고, 최저임금은 노동계의 요구와 달리 5% 인상에 그쳤다. 노동자들은 이전보다 더 많이 일하고 적게 벌게 되겠지. 시간도 돈도 부족한 인생. 물가는 끝을 모르고 치솟는다. 통장의 숫자는 언제나 아슬아슬하고,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것을 포기해야 될 지도 모르겠다.

장마는 곧 끝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우기는 언제쯤 끝이 날까. 시들어버린 수국처럼 축 늘어진 우리의 몸과 마음은 다시 피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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